재정건전성 강화한다더니…인수위, 교육교부금 개혁안 국정과제 초안에도 안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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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만한 재정 운용의 원흉으로 지적받아온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개혁하는 방안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최근 작성하고 있는 국정과제의 초안에조차 포함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겉으로는 재정건전성 회복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근본적이고 장기적으로 예산 운용을 효율화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정부와 인수위 등에 따르면 인수위는 재정의 효율적 사용을 위한 여러 방안을 국정과제에 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교육재정교부금은 논의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의 20.79%가 재정 소요와 무관하게 무조건 초중등 교육을 위해 편성돼 지방교육청에 지급되는 예산이다.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던 산업화 시기에 인적 자본에 대한 국가의 장기적 투자가 보장돼야 한다는 취지로 1972년 현재와 같은 내국세 연동제 방식의 교육재정교부금 제도가 처음 시행됐다.
내국세 연동제 방식의 교육재정교부금 제도는 인구 팽창기에 국민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 예산이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증가한 덕분에 급격히 증가하는 학생 개개인에 대해 양질의 교육이 이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엔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학령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교육재정교부금을 내국세에 연동해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 예산을 필요로 하는 학생은 줄어들고 있는데 경제 성장에 따라 세금이 더 걷혔다는 이유만으로 교육 예산이 필요와 무관하게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편성한 교육재정교부금 예산은 지난해 53조2000억원(본예산 기준)에서 올해 65조1000억원으로 1년 만에 11조9000억원(22.4%) 증가했다. 교육 예산이 그만큼 많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올해 세금이 작년보다 더 많이 걷힐 것으로 예측된다는 이유만으로 초중등 교육 예산이 12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올해엔 정부가 지난해 다 쓰지 못한 5조2000억원의 예산(세계잉여금)이 교육재정교부금으로 추가로 지급될 예정이다.
교부금을 받아 사용하는 교육청은 갑자기 밀려드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장기적 교육 투자와는 거리가 먼 선심성 현금 정책을 펼치는 방식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소진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인천·대전 등 9개 교육청은 유치원 및 초·중·고교생에게 1인당 5만~30만원의 보육·교육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교육청이 학생을 상대로 사실상 용돈을 준 것이다.
안종석 가온조세정책연구소장은 "교육재정교부금이 우발적으로 급격히 늘어난 탓에 교육 현장에선 교육 발전을 위한 장기적 투자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그때그때 돈을 소진하기 위한 현금성 지출을 늘리게 된다"며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선 내국세 연동제 방식의 교육재정교부금 제도를 반드시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육예산을 당장 줄이진 못하더라도 경제성장률이나 물가 상승률에 따라 점진적으로 교육예산을 늘려가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교육재정교부금을 '경상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 연동해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교육재정교부금이 안정적으로 증가하면서도 2021에서 2060년까지 40년간 총 1046조8000억원의 예산이 절감된다고 분석했다. 김학수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현재 교육청과 학교 현장은 교육재정을 알차게 써서 교육의 질을 높일 때 인센티브를 받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예산 집행률을 높이면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라며 "교육 예산의 방만한 운영과 포퓰리즘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교육재정교부금 개혁이 필요하다는 학계의 지적은 학령인구 감소 현상이 본격화한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꾸준히 제기돼왔다. 국가 예산 편성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역시 공개적으로 내국세 연동제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홍남기 기재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진행된 국정감사에 참석해 "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누차 해왔고, 합리적으로 개편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개혁의 필요성이 큰데도 내국세 연동제 방식의 교육재정교부금 제도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은 교육계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이 법 개정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교육재정교부금의 교부율 및 내국세 연동 방식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명시돼 있어 개혁을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
인수위가 국정과제 초안에 교육재정교부금의 개편과 관련한 내용을 담지 않은 것도 오는 6월 1일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지방에 내려보내는 돈을 줄이는 방향의 개혁안을 내놓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화된 교육계의 표심도 무시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수위를 비롯한 윤석열 당선인 측이 누차 재정건전성 회복과 지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온 만큼 교육재정교부금의 구조적 문제를 끝까지 외면하면 위선(僞善)과 다름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지난 3일 "재정은 국가 안정 정책의 최후 보루이기 때문에 항상 건전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추경호 기재부 장관 후보자도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악화된) 재정건전성을 회복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임기 초반 대통령의 강력한 개혁 의지가 없으면 현재와 같은 교육재정교부금 제도는 정치권의 압력에 종속돼 계속 비효율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14일 정부와 인수위 등에 따르면 인수위는 재정의 효율적 사용을 위한 여러 방안을 국정과제에 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교육재정교부금은 논의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교육재정교부금은 내국세의 20.79%가 재정 소요와 무관하게 무조건 초중등 교육을 위해 편성돼 지방교육청에 지급되는 예산이다.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던 산업화 시기에 인적 자본에 대한 국가의 장기적 투자가 보장돼야 한다는 취지로 1972년 현재와 같은 내국세 연동제 방식의 교육재정교부금 제도가 처음 시행됐다.
내국세 연동제 방식의 교육재정교부금 제도는 인구 팽창기에 국민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교육 예산이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증가한 덕분에 급격히 증가하는 학생 개개인에 대해 양질의 교육이 이뤄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엔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학령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어 교육재정교부금을 내국세에 연동해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 예산을 필요로 하는 학생은 줄어들고 있는데 경제 성장에 따라 세금이 더 걷혔다는 이유만으로 교육 예산이 필요와 무관하게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편성한 교육재정교부금 예산은 지난해 53조2000억원(본예산 기준)에서 올해 65조1000억원으로 1년 만에 11조9000억원(22.4%) 증가했다. 교육 예산이 그만큼 많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올해 세금이 작년보다 더 많이 걷힐 것으로 예측된다는 이유만으로 초중등 교육 예산이 12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올해엔 정부가 지난해 다 쓰지 못한 5조2000억원의 예산(세계잉여금)이 교육재정교부금으로 추가로 지급될 예정이다.
교부금을 받아 사용하는 교육청은 갑자기 밀려드는 돈을 주체하지 못해 장기적 교육 투자와는 거리가 먼 선심성 현금 정책을 펼치는 방식으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소진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인천·대전 등 9개 교육청은 유치원 및 초·중·고교생에게 1인당 5만~30만원의 보육·교육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교육청이 학생을 상대로 사실상 용돈을 준 것이다.
안종석 가온조세정책연구소장은 "교육재정교부금이 우발적으로 급격히 늘어난 탓에 교육 현장에선 교육 발전을 위한 장기적 투자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그때그때 돈을 소진하기 위한 현금성 지출을 늘리게 된다"며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선 내국세 연동제 방식의 교육재정교부금 제도를 반드시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육예산을 당장 줄이진 못하더라도 경제성장률이나 물가 상승률에 따라 점진적으로 교육예산을 늘려가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교육재정교부금을 '경상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 연동해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꾸면 교육재정교부금이 안정적으로 증가하면서도 2021에서 2060년까지 40년간 총 1046조8000억원의 예산이 절감된다고 분석했다. 김학수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현재 교육청과 학교 현장은 교육재정을 알차게 써서 교육의 질을 높일 때 인센티브를 받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예산 집행률을 높이면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라며 "교육 예산의 방만한 운영과 포퓰리즘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교육재정교부금 개혁이 필요하다는 학계의 지적은 학령인구 감소 현상이 본격화한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꾸준히 제기돼왔다. 국가 예산 편성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역시 공개적으로 내국세 연동제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홍남기 기재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진행된 국정감사에 참석해 "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문제를 누차 해왔고, 합리적으로 개편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개혁의 필요성이 큰데도 내국세 연동제 방식의 교육재정교부금 제도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은 교육계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이 법 개정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교육재정교부금의 교부율 및 내국세 연동 방식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명시돼 있어 개혁을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
인수위가 국정과제 초안에 교육재정교부금의 개편과 관련한 내용을 담지 않은 것도 오는 6월 1일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지방에 내려보내는 돈을 줄이는 방향의 개혁안을 내놓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득권화된 교육계의 표심도 무시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수위를 비롯한 윤석열 당선인 측이 누차 재정건전성 회복과 지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온 만큼 교육재정교부금의 구조적 문제를 끝까지 외면하면 위선(僞善)과 다름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는 지난 3일 "재정은 국가 안정 정책의 최후 보루이기 때문에 항상 건전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다. 추경호 기재부 장관 후보자도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악화된) 재정건전성을 회복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임기 초반 대통령의 강력한 개혁 의지가 없으면 현재와 같은 교육재정교부금 제도는 정치권의 압력에 종속돼 계속 비효율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