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 가계대출, 금융社 아닌 대출자별 신용관리가 해법 [여기는 논설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역·주택·가격별로 20~70%로 차등적용 중인 LTV(주택가격 대비 대출비율)를 70%로 상향하겠다고 대선기간 중에 공약했다. 청년·신혼부부 등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게는 이 비율을 80%까지 높여주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인수위의 행보는 만만찮은 반대를 뚫어내야 한다. 특히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강력한 장벽으로 부상했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답변에서 "그간의 대출 규제 강화는 가계부채 증가 억제에 기여하는 효과가 작지 않았다"며 "정책적 노력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완화 방침에 반대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후보는 "미시적 대출 완화정책이 확대돼 가계부채 증가 속도에 영향을 주게 되면 물가안정, 금융안정 등에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이력의 이 후보가 금융시스템 리스크 관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관료적 속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중요한 건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거시목표와 긴급한 시중 자금수요을 합리적으로 조화시키는 적절한 '정책 믹스'다. 그 방법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이 차주별 DSR 차등화다. 새 정부는 LTV는 완화를 모색하는 모습이지만 DSR에 대해선 언급을 삼가고 있다. DSR 규제를 통해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안정세로 진정시키는 등 상당 부분 효과를 거두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주택시장 과열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규제의 투박성’ 문제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모든 차주들에게 획일적인 DSR 한도를 적용하다 보니 실수요자의 시장진입이 봉쇄된 상황이다. 중저신용자들의 대출 여력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줄여버린 현행 DSR은 ‘돈 있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규제가 됐다는 비판에 직면해있다.
이같은 업권별 상한선 설정은 전형적인 공급 중심 정책이다. 시스템 리스크 예방에 중요한 은행권에 족쇄를 채우고 대신 다른 금융기관은 풀어주다 보니 대출자의 부담이 증가해 금융시장 부실가능성이 오히려 치솟게 된다. 자금 수요자들이 싸게 대출받을 수 있는 은행에서 밀려나 2·3금융권에서 더 고금리로 돈을 빌려야 해서다.
가계부채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관리하면서도 실수요자에게 대출 길을 열어주기 위해 DSR 한도 '차주별 적용'으로의 전환을 고려할 만하다. 오로지 '현재 소득'으로만 대출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단편적인 평가에서 탈피해 ‘미래 기대소득’을 감안하는 방식으로 대출 심사를 선진화하는 방식이다. 획일적인 DSR 한도를 적용하는 대신 향후 경제활동 가능 기간이 긴 청년 등에 더 높은 DSR 한도를 적용한다면 대출 총액을 관리하면서도 자금 수요에 호응할 수 있다. 차주의 재산·소득 등에 더해 향후 경제활동 기간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상환능력을 판단하는 차등화는 DSR의 본래 취지에도 부합한다.
현행 DSR 규제는 획일적인 한도 적용으로 총량 관리에 치중하다 보니 실수요자에 대한 고민이 실종이다. 업권별 DSR 한도 차이를 줄이고 차주별 특성을 감안하는 정교한 설계가 시급하다. 업권별 한도 설정을 통한 강압적 방식은 연말정산을 기준으로 대출을 결정하는 '안전빵' 대출 관행을 강화해 핀테크 등 금융산업 발전에도 역행한다. 금융회사별로 다양한 신용평가모델을 개발하고 경쟁하도록 유도하는 차별화는 예대마진에 안주하는 한국 금융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