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기업이 지주회사 산하에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속속 설립하고 있다. 지난 2월 GS가 ‘지주회사 1호’ CVC를 세운 게 시작이다. LG, 현대, 효성 등도 국내에 CVC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CVC를 통해 미래 성장동력을 모색하는 기업이 부쩍 늘어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GS 이어 LG·효성도…기업형 벤처캐피털 속도

대기업 잇따라 CVC 설립

18일 경제계에 따르면 GS(GS벤처스)와 현대코퍼레이션(프롤로그벤처스)은 CVC 설립을 완료하고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GS는 2월 금융위에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 설립 신고서를 제출했으며 이르면 상반기 승인이 날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승인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6개월가량 걸리지만 금융위가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는 전언이다. 실제 1호 투자가 이뤄질 시점은 올 하반기께로 예상된다.

현대코퍼레이션은 지난달 30일 주주총회를 열고 사업 목적에 ‘신기술사업회사 및 벤처캐피털 등에 대한 투자 및 관련 사업’을 추가했다. 대표로 신관호 NH벤처투자 이사도 영입하고 관련 경험이 있는 직원들도 새로 뽑았다.

프롤로그벤처스의 지분율은 자금력 등을 고려해 현대코퍼레이션과 현대코퍼레이션홀딩스가 82%, 18%씩 나눠 가졌다. 1호 투자로 GS는 바이오·기후변화 대응 분야를, 현대코퍼레이션은 폐자원 활용 분야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통적인 벤처투자의 목표는 재무적 이익이다. 이에 비해 CVC는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신사업에 선제적으로 투자하고 전문 인력을 선점한다는 의미도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CVC 조직이 있어야 유망 스타트업 발굴이 용이해지고 투자 기법도 다양해진다”며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끊임없이 산업 생태계를 확장할 수 있는 것도 탄탄한 CVC 조직이 뒤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혁신 위해선 CVC 활성화돼야”

LG와 효성도 지주사 아래 CVC를 설립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효성은 올 하반기까지 CVC를 세우는 것이 목표다. 대표이사를 맡을 인력을 외부에서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LG의 국내 CVC 설립 시점은 내년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G는 이미 2018년 미국에 CVC(LG테크놀로지벤처스)를 설립하고 현지 투자를 이어가고 있어 여유를 두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CVC 대표 선임은 다방면으로 검토중이다.

그간 국내 지주회사는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업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를 밑에 둘 수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개정 공정거래법 시행으로 벤처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회사 설립이 가능해졌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대기업들이 CVC를 통해 활발히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정보 투자업체 프레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 CVC 투자 규모는 약 374억달러(약 46조1665억원)에 달하지만 국내 CVC 투자 규모는 18억달러(약 2조2200억원)에 그쳤다. 투자 건수도 미국이 739건으로 국내(62건)보다 약 12배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지주회사 알파벳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구글벤처스의 경우 기존 흐름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혁신 사업에 투자하며 투자이익을 거둬들이고 있다”며 “전략적 투자·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CVC 투자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