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집행부 비난하지 마라"… 노사협상의 12가지 비책
"파업은 노동조합의 시간을 의미하는 동시에 경영진의 시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파업에 쫓기듯 양보안을 내놓는 것보다는 교섭을 잠시 중단하는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다. 노사협상에서 딜브레이크(협상 결렬)는 없다. 협상 중단만이 있을 뿐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며 노사협상을 이끌고 있는 경영인이 책을 냈습니다. 책 제목은 '협상의 내공', 저자의 첫 번째 책입니다. 그래서인지 책은 기존의 노사협상을 다룬 여느 조언서들과 달리 다소 까끌까끌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정제되지는 않았지만, 노사협상 테이블에 함께 앉아있는듯한, 그만큼 적나라한 경험담이자 조언서입니다. 책을 쓴 주인공은 최종 한국GM 부사장입니다.

서울법대 82학번인 최 부사장은 조지워싱턴 로스쿨에서 공부하고 외환위기 당시 삼성그룹에서 국제변호사(뉴욕주)로서 M&A 협상, 금융계약 등 상거래 협상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자동차업계에 투신, 지금은 한국GM의 부사장으로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노사협상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최 부사장은 그간의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가감없는 평가와 솔직한 시각을 풀어놨습니다. 노사 대표들이 합의한 잠정합의안이 조합원총회에서 부결된 경우의 예가 대표적입니다. 즉 조합원들이 단순히 노사교섭 결과만을 보고 가부를 결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저자는 이런 경우를 '부결의 정치공학'이라고 표현합니다.

"노사는 몇 개월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잠정합의를 노사협상 대표 간에 이끌어낸다. 하지만 집행부와 경쟁관계에 있던 현장조직들이 연대하여 조직적으로 부결운동을 펼친다고 할 때 일반 조합원의 과반수 동의를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소위 '집행부 발목잡기'다. 이런 경우 어떻게 국면을 끌고 갈 것인지 플랜B를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최 부사장은 노사협상 과정에서 경영진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언행 몇 가지도 소개했습니다. "노조 집행부를 비난하지 마라. 조합원들의 반감만 일으킬 뿐이다. 회사의 제시안을 자화자찬하지 마라.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말도 부적절할 수 있다. 파업이 발생하면 조합원들이 피해를 본다는 말도 노조의 연대감만 자극할 뿐이다. 파업에는 진정한 승자가 없다고 하라."

최 부사장은 노사교섭의 내공을 쌓기 위한 12가지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 원칙이 '데이터'입니다. 저자는 노사협상에 앞서 회사의 지불능력과 비용구조 등을 감안한 예산에 대한 준비는 물론이고 협상 파트너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협상 파트너에 대해서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노조의 교섭대표들은 교섭 경험이 있는지 아니면 초보인지, 노조위원장의 영향력과 개인적인 카리스마는 작동할 수 있는지, 노조위원장의 주요 선거공약은 무엇이었는지, 최근 노조위원장이 조합원과의 소통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했던 내용은 무엇인지, 노조 집행부 내부의 팀워크는 충분한지 등 이 모든 것들은 노사협상이 진행될 때 노조 집행부의 협상력과 현장관리 능력, 조합 내부의 정치적 역량을 가늠해보는 지표다."

이 밖에 주요 협상원칙으로 저자는 'No로 시작해서 Yes로 끝내라, 때론 침대축구를 하라' '개를 그려달라고 했는데 고양이를 그리지 마라' '쟁점은 쟁점으로 그늘을 드리워라' '모가지에 걸린 가시를 빼지 않고 음식을 넘길 수 없다' '양보의 패턴을 설계하라' 등 제목만으로 인사이트를 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2020년 겨울에 집필을 시작해 1년 여만에 나온 책, 책의 가장 말미에 있는 최 부사장의 생각이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시기에 꽤나 인상적으로 들립니다.

"노사협상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자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일자리는 노사가 함께하지 않으면 보호되지 않을 만큼 불안한 변혁기에 있습니다. 노동법의 조항도, 노동정책의 방향도 모두 그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곳간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이념입니다. 그건 삶을 바라보지 않는 잘난 체이고 만용입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