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주공 사태로 본 '유치권'…트리마제 부지도 좌초 '흑역사' [심은지의 경매 인사이트]
역대 최대 규모 재건축 사업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에 지난 15일부터 ‘유치권 행사’ 플래카드가 걸렸다. 재건축 조합과 시공을 맡은 건설사들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공사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직후다. 1만2032가구에 이르는 대형 사업장에서 유치권 행사가 이뤄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둔촌주공 재건축 사례를 계기로 유치권의 법적 효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유치권(留置權)은 타인의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점유한 자가 이에 관해 생긴 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유치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공사비를 못 받은 건설사가 공사비를 받을 때까지 건물을 차지하는 것이 유치권 행사다.

그런데도 공사비를 받지 못하면 최종 단계는 경매다. 민사집행법 274조엔 ‘유치권 등에 의한 경매’ 조항이 있다. 둔촌주공의 현재 공정률은 52%이고, 시공사가 주장하는 지금까지의 공사비는 1조7000억원에 이른다. 직접 조합에 빌려준 대여금과 금융비용은 1500억원 수준이다. 시공사들은 총 1조8500억여원을 받아야 한다.

유치권에 의한 경매는 둔촌주공 조합원에게도, 시공사에도 최악의 경우다. 조합과 시공사 간 협상이 법정 공방을 거쳐 유치권 행사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와야 가능한 일이다. 만에 하나 경매가 이뤄진다면 부동산 경매 역사에 기록될 만한 규모다.

미준공 건물들은 경매로 나오면 대체로 새 주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우선 권리문제가 복잡하다. 통상 선순위는 대출해준 금융권이고, 다음으로 시공사와 협력업체들이 유치권을 행사한다. 방치 기간이 길수록 추가 공사 비용을 가늠할 수 없어 낙찰률(감정가 대비 낙찰가)도 떨어진다. 대표적으로 경기 이천시 장호읍 유한임대아파트(930가구)가 있다. 이 단지는 2011년부터 5년간 12번의 유찰을 거친 끝에 13번째 경매에서 새 주인을 만났다. 낙찰가는 최초 감정가 299억원의 18%인 53억원이었다. 공정률 65%였던 대전 대흥동의 복합쇼핑몰 메가시티도 마찬가지다. 이 건물은 시행사 부도로 2008년 공사가 중단됐고 2014년부터 20여 차례 공매 입찰을 진행했다.

지금은 초고층 고가 아파트의 대명사가 된 서울 성수동 트리마제는 지역주택조합의 대표 실패 사례로 꼽힌다. ‘성수1지역주택조합’이 2004년 두산중공업을 시공사로 해 사업을 진행했지만 분양가 상한제,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좌초됐다. 두산중공업이 정상화에 나섰지만 분담금, 분양가를 둘러싼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 끝에 조합이 부도났다. 결국 두산중공업이 자체 자금으로 사업을 인수하고 조합원들은 손을 털고 나갔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