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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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즈나 파이낸셜 타임즈, BBC, CNN, Al Jazeera 등을 뒤지면서, 외신의 좋은 칼럼이나 뉴스를 찾는 즐거움은 주말마다 신문을 사는 버릇을 만들어 주었다. 다 알고 있을 것 같은, 뻔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뭔가 색다른 느낌이 있을 것 같은 기대로 인해 이틀이 멀다 하고 신문을 사고 외신을 뒤진다.

어쩌다 읽은 칼럼 한두 개가 글의 소재가 되고, 강의 주제가 되며, 내 삶의 고뇌와 갈등을 해소시켜 준다. 이런 가치와 의미는 돈이나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다.(Value than Price).

코로나 같은 질병, 우크라이나 같은 전쟁, 캘리포니아의 지독한 가뭄, 쓰러져가는 아프리카의 가난 등이 인류 역사에 없었던 적이 있는가? 그럴 때마다 인간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노래로 위로하고, 그림으로 나타냈으며, 오죽하면 소설을 썼겠는가?

최악의 상황에서 생각하고 만들어 낸 게 철학과 문학이며, 예술과 미학이었으려니, 이를 기록하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역사이다. 그래서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불량을 내서 매를 공구실(工具室)에 들어가 맞고 시말서를 쓰고, 도망갈 궁리를 하다가 대학을 가고, 외환위기로 IMF 지원을 받으면서 기업들이 산산이 무너지고 흩어질 때, 회사를 나와 번역을 하고 책을 쓰면서 기업과 대학에 강의를 하던 중에 코로나가 왔다. 갑자기 우울해지고 괴로울 때 소설을 쓰게 되었다.

'파친코'를 쓴 변호사 이민진 소설가도 그랬고, '눈먼 자들의 도시'를 쓴 용접공 주제 사라마구도 그랬다. 나타샤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우연히 썼겠는가? 폴 고갱과 싸우고 난 후 귀를 자른 빈센트 반 고흐의 허전함이나 동생과 바람을 피는 남편을 죽이지 못한 프리다 칼로는 어찌 자신의 가슴에 못을 박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바람을 핀 작은 아버지를 죽이지 못해 고뇌에 빠진 햄릿의 마음을 누가 알까? “죽이느냐 살리느냐? 내가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앞으로 무엇을 더 하게 될지, 뭔가를 더 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그래도 모르는 뭔가를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적어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바로 지금, 고독하고 우울하거나, 괴롭고 슬프다면 뭔가 색다른 일,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와 도전, 변신의 순간(Moment to Change and Challenge / Crucial Turning Point)이다.

망설이는 건 시간 낭비이며, 흔들리는 건 자신의 삶에 대한 게으름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홍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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