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작업이 암초를 만났다. 지주회사 동원엔터프라이즈와 중간 지주회사 격인 동원산업의 합병 추진과 관련, 기업가치 산정 논란에 상법 위반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기관투자가들이 거센 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블래쉬·타이거 등 공동 대응 준비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동원산업에 투자한 기관투자가들이 동원엔터프라이즈와의 합병과 관련해 공동 대응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합병 추진이 발표된 이후 “합병 비율이 불합리하게 산정됐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냈던 블래쉬자산운용과 타이거자산운용, 이언투자자문 등이 이런 움직임에 동참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원산업 합병 '상법 위반 논란'…기관들 뿔났다
이들은 동원산업에 합병 비율을 재산정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우회상장 심사를 담당할 한국거래소, 증권신고서 감독을 맡을 금융감독원에 서면 의견을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사업을 펼치지 않는 지주사가 우량 상장 자회사에 흡수합병되는 이례적 움직임”이라며 “주주대표 소송을 위해 지분 1% 이상 주주가 모여 요건을 충족했으며 소송 전 회사와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원엔터프라이즈는 동원산업과 합병을 추진하기 위한 ‘우회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지난 7일 한국거래소에 제출했다. 동원산업은 주당 액면가 5000원을 1000원으로 분할하는 액면분할도 결정했다. 합병과 액면분할을 반영한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최종 합병 비율은 1 대 3.84로 동원산업 이사회에서 의결됐다.

합병 둘러싼 세 가지 쟁점

이번 합병과 관련한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비상장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와 상장사 동원산업 간 기업가치 산정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다. 동원산업 지분가치를 과소 평가하고, 동원엔터프라이즈가 유리하도록 산정됐다는 게 기관투자가들의 주장이다. 현재 동원산업의 최대주주는 동원엔터프라이즈(지분율 62.72%)지만, 합병 후엔 김남정 동원그룹 부회장(48.43% 예상)이 직접 지배하는 구조가 된다.

기관들은 동원산업의 주가가 순자산가치보다 낮게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동원산업의 합병가액은 시가(주가)와 순자산가치 중 더 높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데도 회사는 시가를 선택했다”며 “독립적 이사회라면 이 같은 가치 산정에 따른 합병을 결의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쟁점은 상법 위반 가능성이다. 이번 합병이 ‘주요 주주와의 거래 내용과 절차는 특별히 공정해야 한다’는 상법 제398조에 위배될 수 있다는 의견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변호사)은 “2011년 상법 398조 개정 이후 계열사 간 합병을 둘러싼 가치 산정 논란은 많았지만 비상장 모회사와 상장 자회사 간 합병은 동원이 첫 사례로 보인다”며 “상법에 따라 거래 공정성에 대한 입증 책임이 있는데도 이사회 의사록 등 어디에도 관련 내용이 없어 위법 소지가 있다”고 했다.

합병 시너지와 관련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한 기관투자가는 “스타키스트 성장성 등을 감안하면 동원산업은 기업가치가 충분히 더 커질 수 있는데 지주회사와 합병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며 “주주가치 손실을 뒤집을 정도의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입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난감해진 동원그룹

동원그룹은 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난감해하고 있다.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의사결정을 가속화하고 동원산업 유통 물량을 늘린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질 정도로 시장의 반응이 부정적이어서다. 동원산업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상장사 가치 산정 시 기준 주가 대신 자산가치를 적용할 수 있다는 근거만 두고 있을 뿐 자산가치 적용이 요구되는 사유, 방법, 절차에 대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다”며 “주가를 기준으로 한 것이 자의적이라는 일부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