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길곤의 데이터로 본 세상] '좋은 정부 의제' 선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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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인지 자문하고
국정과제라도 오류 수정할 유연함 필요
부족함 메울 '현장 목소리' 귀 기울여야
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국정과제라도 오류 수정할 유연함 필요
부족함 메울 '현장 목소리' 귀 기울여야
고길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정책에는 불편한 모순이 많다. 예를 들어 보자. 온실가스를 줄이려면 전력 사용량이 줄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기 요금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산업 경쟁력과 서민 물가 안정이라는 이유로 기존에 책정된 값싼 전기 요금 때문에 전력 소비를 줄이기는 쉽지 않다. 국제에너지기구(IEA)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용 전기뿐 아니라 가정용 전기 요금은 독일의 3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이나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증가했을 뿐 감소하지 않았다.
정부는 ‘플랫폼 정부’, 디지털 뉴딜을 강조하고 있다.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기업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구축된 인공지능(AI) 허브 웹사이트에 제시된 활용 사례를 보면 이 사업에 세금이 투입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민간 AI 학습용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올해 6732억원이나 투입됐다. 반면 공공 데이터를 생산하고 연계해야 하는 통계청 전체 예산은 3800억원밖에 안 된다.
정부는 고유한 행정 전자서명 인증체계(GPKI)를 기반으로 정부 개발 웹서비스 인증서(G-SSL)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행정 전자서명 인증관리센터를 구글 크롬이 인증기관(CA)으로 인정하지 않아 일부 정부 부처 사이트가 ‘안전하지 않은 사이트’로 인식되고 있다. 클라우드도 공공과 민간으로 나누다 보니, 중국도 아닌데 구글 클라우드를 공공 기관에서 사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불편한 현실에 숨어 있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녹색성장과 탄소중립 정책, 디지털 대전환 정책들 모두 바람직해 보이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단순한 문제 해결 논리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저소득층에는 돈을 주면 되고, AI 기술이 부족하면 연구 자금을 지원하면 되고, 온실가스가 문제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정책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정부의 AI 기술 연구자금 지원도 마찬가지다. 지원받는 기업은 해당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겠지만 이것이 AI산업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민간의 벤처 투자 성공률도 10~20%밖에 안 되는데, 자신의 결정에 책임도 지지 않을 평가위원 몇 명의 판단에 의존해야 하는 연구자금 지원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
정부가 국민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잘 아는 이익집단은 정책의 복잡함을 감추는 대신에 간명한 논리로 정치인과 관료를 설득한다. 하지만 유능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정책 의제를 잘 선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좋은 정책 의제를 선별할 수 있을까? 첫째, 정부가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정부보다 시장이 잘 풀 수 있는 문제가 더 많다. 또한 풀 수 있는 문제보다 풀 수 없는 문제가 더 많다.
둘째, 단순 논리의 함정에서 벗어나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부처와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체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캠프 인사들이 외부 인사를 견제하고, 정치인은 공무원을 배제하고, 각 부처는 타 부처를 견제하는 정책 환경하에서 균형된 정책 의제 설정은 요원하다. 자신이 가진 데이터와 분석 플랫폼을 공유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함께하자는 협력적 거버넌스의 정신이 21세기 행정학의 중요 키워드인 것도 혼자서는 복잡한 정책 문제를 이해할 수도, 풀 수도 없기 때문이다.
셋째, 정부는 정책 의제를 언제든 재정의하고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대통령 국정과제조차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정책 환경과 사회 이슈가 매일 변하는 상황이라면 기존에 설정한 국정과제는 수정될 수밖에 없고 성과 지표도 달라져야 한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비서관이 현장에서 부처와 국민 간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처 공무원은 세종시의 컴퓨터 모니터 앞을 벗어나 강원도의 민박집 주인부터 서울의 청년 창업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정책은 모순덩어리에 복잡하고 변덕이 심하다. 문제를 풀려고 하는 순간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정책이다. 정책 결정자가 과학적 근거와 냉철한 분석력을 갖추면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메꿀 수 있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플랫폼 정부’, 디지털 뉴딜을 강조하고 있다.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기업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구축된 인공지능(AI) 허브 웹사이트에 제시된 활용 사례를 보면 이 사업에 세금이 투입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민간 AI 학습용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올해 6732억원이나 투입됐다. 반면 공공 데이터를 생산하고 연계해야 하는 통계청 전체 예산은 3800억원밖에 안 된다.
정부는 고유한 행정 전자서명 인증체계(GPKI)를 기반으로 정부 개발 웹서비스 인증서(G-SSL)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행정 전자서명 인증관리센터를 구글 크롬이 인증기관(CA)으로 인정하지 않아 일부 정부 부처 사이트가 ‘안전하지 않은 사이트’로 인식되고 있다. 클라우드도 공공과 민간으로 나누다 보니, 중국도 아닌데 구글 클라우드를 공공 기관에서 사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불편한 현실에 숨어 있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녹색성장과 탄소중립 정책, 디지털 대전환 정책들 모두 바람직해 보이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단순한 문제 해결 논리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저소득층에는 돈을 주면 되고, AI 기술이 부족하면 연구 자금을 지원하면 되고, 온실가스가 문제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정책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정부의 AI 기술 연구자금 지원도 마찬가지다. 지원받는 기업은 해당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겠지만 이것이 AI산업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민간의 벤처 투자 성공률도 10~20%밖에 안 되는데, 자신의 결정에 책임도 지지 않을 평가위원 몇 명의 판단에 의존해야 하는 연구자금 지원이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
정부가 국민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기를 원한다는 것을 잘 아는 이익집단은 정책의 복잡함을 감추는 대신에 간명한 논리로 정치인과 관료를 설득한다. 하지만 유능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정책 의제를 잘 선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좋은 정책 의제를 선별할 수 있을까? 첫째, 정부가 문제를 왜 풀어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정부보다 시장이 잘 풀 수 있는 문제가 더 많다. 또한 풀 수 있는 문제보다 풀 수 없는 문제가 더 많다.
둘째, 단순 논리의 함정에서 벗어나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부처와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 수렴을 체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캠프 인사들이 외부 인사를 견제하고, 정치인은 공무원을 배제하고, 각 부처는 타 부처를 견제하는 정책 환경하에서 균형된 정책 의제 설정은 요원하다. 자신이 가진 데이터와 분석 플랫폼을 공유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함께하자는 협력적 거버넌스의 정신이 21세기 행정학의 중요 키워드인 것도 혼자서는 복잡한 정책 문제를 이해할 수도, 풀 수도 없기 때문이다.
셋째, 정부는 정책 의제를 언제든 재정의하고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대통령 국정과제조차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정책 환경과 사회 이슈가 매일 변하는 상황이라면 기존에 설정한 국정과제는 수정될 수밖에 없고 성과 지표도 달라져야 한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비서관이 현장에서 부처와 국민 간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처 공무원은 세종시의 컴퓨터 모니터 앞을 벗어나 강원도의 민박집 주인부터 서울의 청년 창업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정책은 모순덩어리에 복잡하고 변덕이 심하다. 문제를 풀려고 하는 순간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정책이다. 정책 결정자가 과학적 근거와 냉철한 분석력을 갖추면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메꿀 수 있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