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에 취해 구조개혁 놓쳐…소·부·장 빼면 빈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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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흔들린다
(2) 아베노믹스가 남긴 후유증
기업성장→임금인상 예상 빗나가
수년간 가계소득 증가율 0%대
'사상 최대' 올해 107조엔 예산
복지·빚 상환액이 3분의2 달해
(2) 아베노믹스가 남긴 후유증
기업성장→임금인상 예상 빗나가
수년간 가계소득 증가율 0%대
'사상 최대' 올해 107조엔 예산
복지·빚 상환액이 3분의2 달해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2년 12월 26일 취임했을 때 닛케이225지수는 10,395였다. 2019년 9월 15일 퇴임일 지수는 23,656. 재임기간 상승률은 230%로 역대 총리 가운데 3위다. 대규모 경기부양책인 ‘아베노믹스’는 20년 장기 침체에 신음하던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현재 일본 경제 위기는 아베노믹스의 후유증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수단이 엔화 약세 유도였다. 취임 당시 달러당 85.35엔이었던 엔화값은 2015년 6월 125.21엔까지 떨어졌다. 2014년 34.62%였던 법인세율을 2018년 29.74%로 낮춰 기업 부담도 덜어줬다. 대신 두 차례 소비세를 올려 세수를 메웠다. 하지만 기업은 늘어난 순이익을 설비투자나 임금 인상에 쓰는 대신 유보금으로 돌렸다. 2012년 304조엔(약 2929조원)이었던 기업 유보금은 2018년 463조엔으로 1.5배 늘었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3%대로 2000년대의 4.2%를 줄곧 밑돌았다.
그 결과 기대했던 임금 인상 및 소득과 소비 증가는 일어나지 않았다. 2012년 말 -1.9%였던 실질 임금상승률은 2019년 말 -1.1%였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가계소득은 0.6%, 소비 지출은 0.3% 느는 데 그쳤다. 기업의 수익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인 노동분배율은 72%에서 66%로 떨어졌다. 오구리 다카시 고마자와대 명예교수는 “아베 정권은 국민의 품에서 돈을 빼앗아 기업의 유보금을 쌓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베노믹스가 금융완화·재정확장 정책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규제 개혁과 성장분야에 대한 투자에 소홀히 한 결과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약화됐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2005년 1% 선이 깨진 이후 20년 가까이 0%대에 머물러 있다.
경제 정책에 대한 일본 정부와 집권여당 자민당의 패착과 실기는 그전에도 있었다. 일본 경제가 1956~1973년 연평균 9.1%의 고도성장을 이어가자 일본 정부는 1973년을 ‘복지 원년’으로 지정하고 대규모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했다. 하지만 1973년은 고도 성장기가 막을 내린 해였다. 이때 만든 방대한 사회보장제도는 두고두고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작년 10월 집권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내각은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세웠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올해 일본 예산은 107조5964억엔으로 10년 연속 사상 최대치다. 저출산·고령화로 세수가 부족해 매년 예산의 30%가량을 적자 국채로 메운다. 올해 예산 가운데 사회보장비(36조엔)와 국채 원리금 상환비(24조엔)만 전체 예산의 3분의 2에 달한다. 일본 정부가 새로운 성장 전략에 예산을 집중하기 어려운 이유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의 ‘경제 브레인’이었던 데이비드 앳킨슨은 “부채가 1000조엔 넘는 국가가 도쿄 인근 대지진과 같은 대규모 재해를 맞으면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재·부품·장비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바꾸는 데도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경제가 애플과 같은 빅테크 출현으로 도약하는 동안 일본 시가총액 상위 종목은 여전히 인프라 기업으로 채워져 있다. 구조가 단순한 디지털 제품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장기인 정밀 가공 기술을 살릴 여지는 줄어들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부메랑 된 아베노믹스
아베노믹스는 대규모 금융완화와 적극적인 재정정책, 과감한 성장전략 등 ‘3개의 화살’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기업 실적이 개선되면 설비투자 증가와 임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소득과 분배가 늘어 소비가 확대된다는 구상이었다.대표적인 수단이 엔화 약세 유도였다. 취임 당시 달러당 85.35엔이었던 엔화값은 2015년 6월 125.21엔까지 떨어졌다. 2014년 34.62%였던 법인세율을 2018년 29.74%로 낮춰 기업 부담도 덜어줬다. 대신 두 차례 소비세를 올려 세수를 메웠다. 하지만 기업은 늘어난 순이익을 설비투자나 임금 인상에 쓰는 대신 유보금으로 돌렸다. 2012년 304조엔(약 2929조원)이었던 기업 유보금은 2018년 463조엔으로 1.5배 늘었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3%대로 2000년대의 4.2%를 줄곧 밑돌았다.
그 결과 기대했던 임금 인상 및 소득과 소비 증가는 일어나지 않았다. 2012년 말 -1.9%였던 실질 임금상승률은 2019년 말 -1.1%였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가계소득은 0.6%, 소비 지출은 0.3% 느는 데 그쳤다. 기업의 수익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인 노동분배율은 72%에서 66%로 떨어졌다. 오구리 다카시 고마자와대 명예교수는 “아베 정권은 국민의 품에서 돈을 빼앗아 기업의 유보금을 쌓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베노믹스가 금융완화·재정확장 정책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규제 개혁과 성장분야에 대한 투자에 소홀히 한 결과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약화됐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2005년 1% 선이 깨진 이후 20년 가까이 0%대에 머물러 있다.
구조개혁 외면한 대가
구조개혁을 외면하고 땜질식 처방으로 일본 경제의 약체화를 불러온 것은 아베 정부만이 아니다.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장기 침체를 “정책 오류와 폐쇄성이 빚어낸 성장 상실의 30년”으로 정의했다.경제 정책에 대한 일본 정부와 집권여당 자민당의 패착과 실기는 그전에도 있었다. 일본 경제가 1956~1973년 연평균 9.1%의 고도성장을 이어가자 일본 정부는 1973년을 ‘복지 원년’으로 지정하고 대규모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했다. 하지만 1973년은 고도 성장기가 막을 내린 해였다. 이때 만든 방대한 사회보장제도는 두고두고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작년 10월 집권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 내각은 ‘새로운 자본주의’를 내세웠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올해 일본 예산은 107조5964억엔으로 10년 연속 사상 최대치다. 저출산·고령화로 세수가 부족해 매년 예산의 30%가량을 적자 국채로 메운다. 올해 예산 가운데 사회보장비(36조엔)와 국채 원리금 상환비(24조엔)만 전체 예산의 3분의 2에 달한다. 일본 정부가 새로운 성장 전략에 예산을 집중하기 어려운 이유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의 ‘경제 브레인’이었던 데이비드 앳킨슨은 “부채가 1000조엔 넘는 국가가 도쿄 인근 대지진과 같은 대규모 재해를 맞으면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재·부품·장비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바꾸는 데도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경제가 애플과 같은 빅테크 출현으로 도약하는 동안 일본 시가총액 상위 종목은 여전히 인프라 기업으로 채워져 있다. 구조가 단순한 디지털 제품 시대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장기인 정밀 가공 기술을 살릴 여지는 줄어들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