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코로나19 위기가 본격화된 2020년 4월말부터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금융권 대출에 대해 일괄적으로 만기연장 또는 원리금 상환유예를 해주고 있습니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이 같은 혜택을 받은 소상공인 대출 잔액은 133조8000억원(70만1000건)에 달합니다. 이 가운데 만기연장이 116조6000억원(65만1000건)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원금 상환유예 12조2000억원(3만8000건) △이자 상환유예 5조1000억원(1만2000건) 등으로 집계됐습니다.
인수위는 이 가운데 보험이나 신용카드, 저축은행, 대부업 등 2금융권 대출을 1금융권인 시중은행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지원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은행에서는 2금융권에 비해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습니다. 물론 이에 따른 금리 차는 정부나 정책금융기관에서 대신 부담하겠다는 게 인수위의 구상입니다.
이 같은 대환 대출 아이디어는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닙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에도 전 금융권이 참여해 비싼 금리의 대출을 싼 금리로 곧장 갈아탈 수 있도록 하는 '공공 대환 대출 플랫폼'을 추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금융위의 이 같은 원대한 꿈(?)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취지는 좋았지만 곳곳에 걸림돌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공 대환 대출 플랫폼 자체가 핀테크의 대출 비교 서비스에서 착안한 만큼 가뜩이나 '빅테크의 공습'에 두려움이 컸던 기존 은행권에서는 반발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지요. 고객을 은행에 빼앗길 수밖에 없는 2금융권 역시 달가울 리 없었습니다.
그러다 8월말 취임한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가계대출 총량규제 드라이브를 걸면서 공공 대환 대출 플랫폼 사업은 점점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끝내 유야무야됐지요. 은행들이 저마다 총량규제에 막혀 신규 대출마저 중단하는 상황에서 대환 대출 플랫폼이 추진 동력을 상실한 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올 들어 분위기는 다시 반전됐습니다. 시중 금리가 급등하고 가계대출이 감소하자 은행들은 부랴부랴 금리를 낮추고 영업을 다시 확대하고 있지요. 차주의 금리 부담을 조금이라도 낮춰주기 위해 대환 대출을 활성화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는 셈입니다.
인수위는 일단 코로나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이 2금융권에서 빌린 자금(3조6000억원)에 대해 은행권 대환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사실 전체 코로나 소상공인 대출(133조8000억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69%에 불과해 정책 효과가 크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인수위 관계자도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소상공인 금융 지원책의 핵심은 결국 '배드뱅크(부실채권 정리기관)'로 대환 대출은 다소 부차적인 프로그램"이라고 말했습니다.
코로나 소상공인 대출의 만기연장·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는 6개월 단위로 총 4차례 연장돼 오는 9월말까지 무려 2년 6개월 동안 유지될 예정입니다. 이제 코로나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거의 끝난 만큼 9월 이후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또다시 연장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소상공인들은 갑작스러운 대출 상환에 내몰려야 하고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잠재 부실이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인수위와 금융위가 부디 소상공인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합리적인 범위에서 빚 상환 부담을 완화해줄 수 있도록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주길 기대해봅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