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력 강화와 남북관계는 별개' 논리로 남측에 '핵개발 용인' 압박
전문가 "긴장 책임 南차기 정부에 돌리고 남남갈등 유도 의도도"
'이중행보' 김정은, 핵위협·핵실험 준비하며 관계발전엔 '의지'
대남 전술핵무기 위협과 핵실험 준비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를 통해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 '이중적인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올해 들어 수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더니 지난달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쏘아 올렸고 최근 7차 핵실험을 준비하는 동향까지 포착된 상황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언급한 것은 언뜻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이런 '이중 행보'는 핵무력 강화와 남북관계는 별개라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비핵화가 곧 남북관계 정상화'라는 윤석열 차기 정부의 생각과는 괴리가 크다.

22일 청와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보낸 친서에 대해 21일 답장에서 "희망한 곳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역사적 합의와 선언을 내놓았다"며 "이는 지울 수 없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역사적 합의와 선언'은 2018년 4월 판문점선언과 그해 9월 평양공동선언, 9·19 남북군사합의 등을 뜻한다.

그는 그러면서 "이제껏 기울여온 노력을 바탕으로 남과 북이 정성을 쏟으면 얼마든지 남북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변함없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도출된 남북간 합의들을 남측의 차기 정부도 호응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이날 인수위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나 남북 정상이 교환한 친서와 관련해 "반드시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새 정부에서 듣기를 바라는 내용도 제법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의미로 읽힌다.

권 후보자는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 신뢰나 남북 관계의 진전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선제공격을 받으면 전술핵으로 남측을 타격할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까지 하는 상황에서 김정은이 남북관계 발전을 언급하는 것은 국방력 강화는 미국에 맞선 자위권 차원일 뿐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게 없다는 논리에 따른 것으로 해석한다.

바꿔 말하면 남측도 북한의 핵 개발을 용인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신들의 국방력 강화만 문제 삼는 것은 '이중 잣대'라며 남측에 철회를 요구해 온 그간의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도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으며, 차기 정부도 마찬가지다.

차기 정부는 남북관계와 관련해 항상 비핵화를 언급하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관계자는 이날 남북 정상의 친서 교환에 대해 "비핵화를 통해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는 것이 민족의 대의라고 본다"고 밝혔다.

권영세 후보자도 지난 14일 "북한이 핵무기가 있고 핵 개발을 계속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정상화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차기 정부의 이런 입장을 잘 알면서도 김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친서를 공개하며 '남북관계 발전'을 언급한 것은 향후 비핵화를 둘러싸고 남북이 갈등을 빚을 때 그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각에서는 대북정책을 놓고 이견을 보이는 남측의 진보와 보수세력의 틈을 파고드는 일종의 남남갈등 유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자신들의 공세적 행위에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강력히 대응할 경우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면서 한반도 긴장의 책임을 오히려 윤석열 정부로 돌리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평화 대 대결'이라는 이분법을 활용하여 남남갈등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분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