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의 전기 수직이착륙 비행체. 조비 에비에이션 제공
조비의 전기 수직이착륙 비행체. 조비 에비에이션 제공
미국 실리콘밸리의 중심도시 산타클라라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약 1시간 10분(약 116km) 정도 달리면 마리나시립공항(Marina Municipal Airport)이 나온다. 1994년까지 미국 육군의 군사시설이었지만 지금은 미국 도심항공교통(UAM)업체 조비 에비에이션(Joby Aviation, 티커 JOBY)의 공장과 연구소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21일 방문한 조비 마리나 공장에선 회사의 주력 제품인 '전기 수직이착륙 비행체(eVTOL)' 제조 작업이 한창이었다. 3m가 넘는 길이의 로봇 팔이 탄소섬유를 조합해 비행체 날개를 만들고 있었다. 기체 부품에 물을 뿌리며 초음파로 안전성을 검사하는 로봇도 쉴새없이 움직였다. 이 공장은 eVTOL의 원재료인 탄소섬유가 최고의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온도와 습도까지 자동으로 조절한다.

6개 프로펠러에 예비용 모터와 인버터 탑재..."안전성 높였다"

조비는 전 세계 UAM용 비행기 제조 업체 중 '기술력이 가장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UAM은 '하늘을 나는 택시'로 불리는 차세대 운송 수단이다. 대도시 교통난 해소의 열쇠로 평가된다. 조비에 따르면 미국 뉴욕 도심에서 JFK국제공항까지 차로 49분 걸리는 거리를 eVTOL을 타면 7분만에 갈 수 있다.
첨단 AFP(Automatic Fiber Placement) 머신이 탄소 섬유와 에폭시를 복합한 항공기 기체의 재료를 정확하게 배치하는 작업을 하는 모습. 조비 에비에이션 제공
첨단 AFP(Automatic Fiber Placement) 머신이 탄소 섬유와 에폭시를 복합한 항공기 기체의 재료를 정확하게 배치하는 작업을 하는 모습. 조비 에비에이션 제공
조비의 eVTOL은 2019년 전 세계 최초로 미국 항공운항국(FAA)의 2단계(G-1) 승인을 받았다. 2023년 FAA 최종 승인을 받고 2024년 미국에서 UAM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지난해 8월엔 뉴욕 증시에 상장해 약 13억달러(약 1조6000억원)를 조달했다.

조비가 FAA 인증 경쟁에서 가장 앞서 있는 건 가장 중요한 스펙으로 꼽히는 안전성을 증명하고 있어서다. 도심 하늘을 날아다니는 UAM 비행기의 특성상 추락은 대형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조비 eVTOL은 전기 엔진으로 돌아가는 여섯 개의 프로펠러를 통해 움직인다. 각 프로펠러엔 예비 모터와 인버터가 장착돼있다. 또 복수의 배터리팩에도 연결돼있다.

이 때문에 갑작스러운 엔진 고장에도 상당 거리를 운항할 수 있다. 저스틴 랭 조비 전략·대외협력 담당 헤드(부사장)는 "동력이 분산돼있기 때문에 모터나 배터리에 문제가 생겨도 추락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조비는 10년 간 1000번 이상의 비행 테스트를 완료했다.

전기 충전 한 번으로 4명 태우고 240km 비행 가능

1회 충전으로 4명의 승객을 태우고 최대 시속 322km로 약 240km를 비행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가볍지만 질긴 탄소섬유로 비행체를 만들어 중량을 줄였기 때문이다. 조비에 따르면 eVTOL의 탄소섬유 비중은 98%에 달한다.

보통의 항공기 스타트업은 탄소섬유 공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하지만 조비는 로봇에 투자해 작업 시간을 줄이고 정밀성을 높였다.

기자는 이날 조비가 eVTOL 조종석과 똑같게 만든 시뮬레이터를 체험했는데, 헬리콥터처럼 하늘방향을 향해 돌던 6개의 프로펠러가 시속 60마일을 넘어가자 비행기처럼 전방을 향해 돌아갔다. 비행 환경에 맞춰 전력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목적이다. 에릭 클라식 엔지니어는 "이륙이나 착륙 때 속도를 제한하는 'TRC' 모드와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크루즈컨트롤 등으로 비행기의 안전성을 높였다"고 강조했다.
조비의 전기 수직이착륙 비행체가 하늘을 나는 모습. 조비 에비에이션 제공
조비의 전기 수직이착륙 비행체가 하늘을 나는 모습. 조비 에비에이션 제공
소음도 획기적으로 줄였다. eVTOL의 소음은 65db(데시벨) 수준이다. 헬리콥터(150db)와 격차가 크다. "오히려 도서관(40db)과 비슷하다"는 게 조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랭 헤드는 "조비가 직접 제조하는 전기모터는 타사 제품의 3배 넘는 추진력을 내면서도 조용하다"며 "더 빠르고 깨끗한 교통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UAM 글로벌 시장은 2023년 약 7조6000억원에서 2040년 약 730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조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간 우버가 7500만달러, 도요타에서 4억달러를 조비에 투자했다. 한국 기업 중에선 SK텔레콤이 지난 2월 조비와 '전략적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식엔 유영상 SK텔레콤 대표(CEO)가 직접 참석했다. 유 대표는 지난해 12월 직속조직인 UAM 사업추진 TF(태스크포스)를 발족시킬 정도로 사업에 관심이 큰 것으로 알려져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리나시의 조비 에비에이션 R&D 센터에서 UAM 서비스 실증에 투입되는 시제기의 모습. 조비 에비에이션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리나시의 조비 에비에이션 R&D 센터에서 UAM 서비스 실증에 투입되는 시제기의 모습. 조비 에비에이션 제공

SK텔레콤, 조비와 협업으로 '종합 UAM 플랫폼 기업' 도전

SK텔레콤은 2019년부터 사업화를 검토했다. 지난해 1월 한국교통연구원, 한국공항공사, 한화시스템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최근 한국기상산업연구원과도 협약을 체결했다. 2025년부터 국내에서 본격적인 UAM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UAM 시장은 '비행기 제조', 고객 호출부터 탑승, 운행 등을 관리하는 '서비스', 탑승장 같은 '인프라' 등 세가지 영역으로 구성된다. SK텔레콤은 이동통신산업에서 다져온 서비스 노하우와 도심 교통 데이터에 조비의 기체 제조 기술, 한국공항공사 등의 인프라 역량을 결합해 한국 UAM 사업을 선도할 계획이다. 조비와의 협업은 내년 시작되는 국토교통부의 UAM 실증(그랜드챌린지)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민용 SK텔레콤 최고개발책임자(CDO)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통혼잡비용은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SK텔레콤은 UAM 종합 플랫폼 제공업체가 돼 비용을 낮추는 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나=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