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는 시행 36년째인 대기업집단지정제도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도 도입 근거인 경제력 집중이 상당 부분 완화된 데다 지나친 규제여서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4일 경제계와 학계에 따르면 대기업집단지정제도가 이제는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낡은 규제라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기업집단 지정은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목적으로, 매년 일정 규모의 기업을 관리 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하는 제도다. 1986년 도입된 이 제도는 해당 기업에 대해 출자총액 제한, 상호출자 금지 등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에 제한을 두는 것도 이 제도에 근거한다. 일감 몰아주기로 총수 일가가 사익 편취를 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기업 총수 일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동일인 제도도 도입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을 위해 동일인(총수) 기준으로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현황과 계열사 주주 현황 등 지정 자료를 제출받는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은 “동일인으로 간주되면 출자 제한과 내부거래 제한 등을 같이 받게 되고, 동일인 신고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땐 형사고발까지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 같은 규제가 더 이상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공정거래법 제정 당시인 1980년대는 경제 개방도가 낮아 일부 기업의 국내 시장 독점이 가능했지만 현재와 같은 개방경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시장 개방도는 1980년대 65.6%에서 2010년대 91.5%로 상승했고,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도 57개국에 달한다.

전경련은 상위 대기업집단이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것도 대기업집단지정제도의 필요성이 줄어든 이유로 꼽는다. 30대 그룹 매출이 우리나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37.4%에서 2019년 30.4%로 낮아졌다. 10대 그룹의 매출 비중도 같은 기간 28.8%에서 24.6%로 하락했다.

동일인 지정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동일인 지정제도는 재벌 일가의 족벌 중심 경영체제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재벌 일가가 아니라 스타트업으로 출범해 외국 자본 등의 투자를 받은 쿠팡, 네이버 등에 동일인 지정제도를 적용하기엔 무리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대기업집단 지정을 통한 과도한 규제로 소비자에게 간접적인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대기업집단을 지정해 기업을 통제하는 경우는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며 “일반 회사법에 따라 주주총회나 이사회에서 감시하면 되는데, 불필요한 규제로 행정력을 소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최근 외국인 총수 지정 문제를 국정과제에 포함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신 현행 규제 대상인 대기업 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