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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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중앙은행(Fed)은 통화정책의 목표로 물가 안정과 함께 최대 고용을 제시하고 있다. 대부분 국가의 중앙은행이 물가안정만을 목표로 하는 것과 다르다. 이른바 Fed의 '양대 책무(dual mandate)'다.

통화정책의 목표는 중앙은행의 성격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물가안정만 생각해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이 높아지고, 고용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고용 확대까지 통화정책 목표에 넣으면 그만큼 금리 인상에 신중해지는 이유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목표에는 물가안정만 규정돼 있다. 이는 Fed에 비해 매파적이 될 수 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일 수 있다. 그렇다보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원들은 한은에 대해서도 정책 목표에 고용 확대를 넣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해당 내용이 명시된 한국은행법 개정을 통해서다.

"고용안정 목표 추가해 필요할 땐 돈 풀어야"

지난해 11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소위원회 회의에서 관련 문제가 논의됐다. 여기서 의원들은 한은의 통화정책 목표에 최대 고용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 개정안을 낸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용안정 등 실물경제 지원에도 한은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예가 있고 영국중앙은행만 해도 그렇다."

김태년 민주당 의원의 부연이다.

"한은의 주요 목표, 물가 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정도의 수준이라면 고용 안정도 충분히 목표에 넣을 수 있다. 물가 안정과 고용 안정을 같은 선상에 놓지 않고 최소한 고용 안정을 보조 수단으로 넣는 것 정도는 정부에서도 수용할 수 있지 않는가."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을 냈다. 통상 민주당이 확정 재정과 통화 정책 완화를 통한 경기 부양을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보수적인 재정·통화 정책을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류 의원이 소위 위원장을 맡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 않은만큼 의원실 관계자로부터 배경 설명을 들었다.

"통화정책은 자동차 운전과 마찬가지로 감속페달과 가속페달을 함께 써야 한다. 만약 중앙은행이 물가만 신경 쓴다면 통화량을 줄이는 감속 페달만 신경 쓸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고용 안정이라는 목표를 추가해 필요할 때는 가속 페달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법 개정안의 취지였다."

"목표 추가되면 한은 신뢰성만 떨어뜨려"

이같은 지적에 대해 한은과 기획재정부는 한목소리로 반대 의견을 냈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의 말이다.

"한은의 목표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면 물가안정이라는 목표와 상충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실제로 한은이 고용안정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적이다. 마지막으로 한은이 고용안정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지키지 못하면 한은의 신뢰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

이같은 문제 제기 중에서도 한은 측은 두번째, 고용안정을 달성할 수단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이승헌 한은 부총재의 설명이다.

"또다른 목표를 추가할 때는 그를 달성할 많은 수단이 필요한데, 한은 입장에서 고용안정을 달성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 당장 기존 한은 통화정책의 목표 중 하나인 금융안정을 달성하는 데에도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과 비교해 한계가 있다.

금융감독 기능까지 갖고 있는 일부 국가 중앙은행과 비교해 한국은 관련 기능이 독립돼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당시 금융안정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도 개별 금융사의 사정을 들여다볼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가운데 고용안정까지 목표로 추가되면 이를 달성할 수 있을까.

물가나 금융안정 등과 어떻게 조화를 이뤄 낼지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이를 위해서도 추가적인 고민과 자원이 필요하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비슷한 맥락에서 반대 의견을 냈다.

"(한은은) 금리라는 정책 수단만 갖고 이미 규정된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놓고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선언적 의미로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모르겠다."

그와중에 되살아난 인플레이션의 망령

이처럼 국회에서 활발하게 이뤄진 한은의 역할 논쟁은 당분간 사그라들 전망이다. 올초부터 세계 물가가 급등하며 중앙은행의 제1 목표인 물가안정의 중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고용안정을 목표에 추가하자는 의원들의 요구는 지난 10년간 이례적인 저물가 상황에 기인한 것이다. Fed의 통화정책 결정 등 주요국 통화정책을 한은이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국제 역학관계를 무시한 것일 수도 있다.

관련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 관계자도 "이후 추가 논의를 하기로 하고 회의를 끝냈지만 최근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의미 있는 논의를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