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환경경영ABC⑩
테슬라 전기차가 초고속 충전기로 충전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테슬라 전기차가 초고속 충전기로 충전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대세인 요즘, ‘필(必)환경 시대’라는 말도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친환경이 필수라지만 일반 소비자가 어떤 것이 친환경 제품이고, 무엇이 친환경 소비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우리가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법이 바로 전과정평가(Life Cycle Assessment, LCA)다. 환경경영은 제품이나 서비스 전과정을 대상으로 환경성을 제고하는 일이 핵심이다. 이때 고려해야 하는 전과정이란 특정 기업의 내부 활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앞뒤에 연계된 모든 활동을 포함한다. 경제활동의 전과정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환경성을 평가해야 지구생태계에 미치는 환경영향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환경 제품의 판별 기준 ‘전과정평가’


환경영향 평가수단, 전과정평가

전과정평가는 ‘원료의 채취 및 조달, 가공, 제품 제조, 사용 및 폐기 등 모든 과정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와 물질, 배출되는 폐기물을 규명하고 정량화함으로써 제품 및 서비스와 관련한 환경부하를 평가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전과정평가는 모든 경제 주체에게 필요한 환경영향 평가 수단이다. 기업은 자사 제품을 대상으로 한 전과정평가로 환경 개선의 기회와 우선순위를 파악해 제품의 환경 성과를 향상시켜 경쟁력을 높이게 된다. 소비자는 제품의 환경 측면과 그 영향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친환경 구매 의사결정에 활용하게 되며, 정부나 공공기관은 전과정평가 자료를 정책결정 과정에 활용함으로써 친환경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에너지 분야에 처음 적용된 것으로 알려진 전과정평가 기법은 1997년 ISO 14040 규격이 공표된 이후 적용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ISO 규격에서는 전과정평가의 실행 과정을 목적 및 범위 설정, 전과정 목록(inventory) 분석, 영향평가, 결과 해석 등 네 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전과정평가 첫 단계는 평가 수행 목적과 결과의 적용 영역을 설정하는 과정이다. 전과정평가는 그 목적에 따라 수집할 데이터, 분석 방법, 결과 등이 달라지기에 먼저 어떤 목적으로 이를 수행하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목적이 정해진 다음에는 평가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
전과정평가 범위는 제품 및 제품 시스템, 제품의 시스템 경계, 필요한 데이터 등의 요소를 고려해 정하게 된다. 평가 범위는 사전에 설정한 목적을 충분히 다룰 수 있어야 하며, 모든 기준과 가정은 그 근거를 제시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 중 하나가 기능 단위(functional unit)라는 개념이다. 이는 특정 제품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기능을 정량화한 것으로, 제품 시스템의 기능적 산출물의 성과를 측정하는 수단으로 전과정 분석을 위한 비교기준이 된다.

두 번째 단계인 전과정 목록분석은 설정된 목적과 범위에 따라 대상 시스템과 그 투입물 및 산출물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계산하는 과정으로 데이터 수집 준비, 수집 및 검증, 정량화, 할당, 종합 등이 이루어진다. 전과정 목록분석 과정에서는 데이터가 애초에 설정된 평가목적과 시스템 경계, 데이터 품질 등 요건에 적합한지 지속적으로 검증해야 하며, 불충분하다고 판단될 경우 다시 데이터를 수집하는 등 반복적 확인이 필요하다.

다음 단계는 전과정 영향평가로, 목록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잠재적 환경영향을 평가하는 과정이다. 이는 목록분석 단계에서 투입물 및 배출물이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기술적, 정성적, 정량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으로 필수인 분류 및 특성화, 선택 사항인 정규화 및 가중치 부여 등 네 가지로 구성된다. 마지막 단계인 결과 해석은 목록분석과 영향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전과정평가 대상 제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개선이 필요한 부분 등 평가 목적에 맞게 결론과 활용 방안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는 주요 이슈의 규명, 완성도·민감도·일관성 평가, 결론 및 건의 등 세 가지 요소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의 테슬라 본사. 사진=연합뉴스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의 테슬라 본사. 사진=연합뉴스
전기차에도 적용될 전과정평가

일반적으로 전과정평가는 공정 및 데이터 분석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는 탓에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 현실적 필요나 다양한 활용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제점이나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시스템 경계의 설정, 데이터 확보, 영향 범주 선정 등 전과정평가 핵심 사항과 평가 과정에서 설정하는 가정이 대부분 주관적으로 결정된다는 점, 그리고 목록분석이나 환경영향 평가 때 사용하는 모형 역시 여러 가정을 바탕으로 설정되므로 잠재적 영향을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 특정 국가나 지역의 환경 여건이 서로 다르기에 세계적 또는 지역적 환경문제에 맞춰 마련한 각종 평가 기준과 데이터를 다른 국가나 기업 단위에 적용할 경우 부적합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고 관련 데이터의 활용 가능성, 접근 가능성, 데이터의 질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영향평가의 해석 단계에서도 주관적 요소가 상당 부분 포함될 수밖에 없기에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전반적으로 평가 주체, 목적, 대상을 명확히 하고 객관성과 투명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이러한 문제점이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환경성 평가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어 전과정평가 적용도 꾸준히 늘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 급속히 늘고 있는 전기차의 경우 운행이 집중된 대도시에서는 친환경적이라 하겠지만, 충전할 때 사용하는 전기가 다른 지역의 석탄발전소에서 생산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근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가 크게 확산하면서 탄소중립 이행이 불가피하다 보니 자동차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규제 역시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유럽연합(EU)을 비롯한 각국에서 자동차 LCA 기준 마련에 나서고 있어 자동차 생태계에 큰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자동차 환경규제는 주로 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Tank to Wheel, TtW)으로 평가한다. 여기에는 일산화탄소를 비롯해 질소산화물, 탄화수소, 미세먼지 등이 해당된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경우 연비가 높을수록 온실가스 배출이 적고 전기차는 온실가스 배출이 없다. 하지만 전과정평가가 적용되면 이런 평가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TtW뿐 아니라 연료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과 자동차 생산, 윤활유 및 부품 교체, 폐기와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전과정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완성차 제조업체는 물론 자동차 부품업체도 생산공정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청정 생산 기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병욱 전 환경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