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 30년 차 이상 아파트의 재건축 안전진단 면제’ 공약이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가면서 경기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의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진은 1991년 완공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시범현대아파트.   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준공 30년 차 이상 아파트의 재건축 안전진단 면제’ 공약이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가면서 경기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의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진은 1991년 완공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시범현대아파트. 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윤석열 당선인의 주요 대선 공약인 ‘준공 30년 차 이상 아파트의 재건축 안전진단 면제’를 사실상 폐기하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주거지 용적률 500% 상향’ 등을 담은 ‘1기 신도시 재정비 촉진 특별법’ 제정도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선 이후 서울 강남권과 수도권 1기 신도시에서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로 집값이 다시 들썩일 조짐을 보이자 ‘신중 모드’로 돌아선 것으로 풀이된다.

1기 신도시 과열 조짐에 정책 선회

인수위 관계자는 이날 “1기 신도시 재정비는 ‘특별법 제정’이라는 별도의 트랙으로 가되 긴 호흡으로 신중히 접근하겠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도시 전체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부터 그리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주택 공급 확대와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해 재건축 규제 완화는 계획대로 추진하지만, 성급하게 밀어붙여 집값이 과열되는 것은 막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날 인수위 안팎에선 “안전진단 면제 공약은 사실상 폐기되는 분위기”라는 얘기도 나왔다.

인수위가 재건축 규제 완화에 신중한 입장을 보인 데는 지난달 이후 집값이 꿈틀대는 1기 신도시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금리 인상 등 여파로 수도권 집값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1기 신도시에선 지난달 이후 거래가 늘고 집값도 반등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아파트값은 이달 둘째 주 0.01% 올라 1월 넷째 주 이후 11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고양시 일산동구와 일산서구 아파트값도 대선 직후인 3월 중·하순을 기점으로 상승 전환했다. 매수 수요가 늘면서 성남시의 지난달 아파트 매매 건수는 236건(경기부동산포털 집계)으로 2월(108건)의 두 배를 넘어섰다. 고양시(275건→520건), 평촌이 있는 안양시(87건→151건)도 거래량이 100% 가까이 늘었다.
일부 재건축 추진 단지에서는 직전 거래가보다 수억원 오른 신고가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일산서구 주엽동의 입주 28년 차 아파트인 ‘문촌17단지신안’ 전용면적 172㎡는 이달 6일 사상 최고가인 13억55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달 초 거래가(12억원)보다 1억5000만원 넘게 뛴 금액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난 ‘부동산 민심’을 등에 업고 대선에서 승리한 윤 당선인으로선 집값 과열에 따른 민심 이반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며 “6월 지방선거도 앞두고 있어 당분간 ‘시장 안정’에 우선순위를 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분당·일산 재건축 추진 동력 약화되나

1기 신도시는 지난해 분당을 시작으로 2026년까지 총 27만여 가구가 ‘입주 30년 차’를 넘기게 된다. 주민들 사이에 열악한 주거 환경에 대한 불만이 많지만, 아직 재건축 사업 청사진인 도시·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이 세워진 곳은 없다. 분당구 서현동 ‘시범한양’ 등 4개 단지가 작년 10월 1기 신도시에선 처음으로 재건축 추진 준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재건축은 기존보다 늘어난 주택을 일반에 분양해 나오는 수익으로 사업비를 충당한다. 그러나 1기 신도시들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도시 과밀을 막기 위해 만든 지구단위계획의 용적률 제한에 묶여 있어 지금보다 가구 수를 늘리는 게 불가능하다. 성남시의 ‘분당 도시·주거환경 정비 방안’에 따르면 분당신도시 내 3종일반주거지역 아파트의 평균 ‘여유 용적률’(지구단위계획상 용적률 상한-현재 용적률)은 1.6%에 불과하다. 분당의 평균 용적률은 186%다. 지구단위계획 용적률 제한 문제를 풀지 못하면 정비계획 수립은커녕 조합도 세울 수 없다.

이 때문에 1기 신도시 재건축 추진 아파트들은 현행 지구단위계획을 뛰어넘는 특별법을 만들어 용적률을 대폭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인수위가 재건축 규제 완화 속도 조절을 시사함에 따라 이들 단지의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헌형/양길성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