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지역가입자에 평균보험료 일괄 부과 사례 외국엔 없어"
입법조사처 "외국인 차별 조건 완화해 합리성·수용성 제고 필요"
일부 외국인의 건강보험 '먹튀' 행태를 막고자 건강보험제도를 강화하다 보니 저소득 외국인 지역가입자가 상대적으로 과중한 건강보험료를 부담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며 이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국회 보고서가 나왔다.

25일 국회입법조사처의 '외국인 건강보험제도 현황과 가입자의 수용성 제고를 위한 개선 방향'(문심명 입법조사관) 보고서를 보면, 그간 일부 외국인이 진료목적으로 입국해 단기간 치료받고 출국하는 등 건보 제도를 부적절하게 이용하는 문제가 생겨 건강보험당국은 수년에 걸쳐 외국인의 건강보험 가입과 보험료 부과 기준 등을 강화했다.

우선 외국인이 지역가입자 자격을 얻기 전에 국내 체류해야 하는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한 데 이어 외국인 본인의 필요와 선택에 따라 지역가입자로 임의로 가입할 수 있던 방식을 '당연 가입'으로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2019년 7월부터 한국에 들어와 6개월 이상 거주하는 외국인은 직장가입자나 피부양자가 아니면 의무적으로 지역가입자로 건강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전액 부담해야 한다.

문제는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경우 대부분 이주노동자 신분으로 소득수준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내국인과 견줘서 상대적으로 비싼 건보료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건보 당국이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재산과 소득을 파악하기 어려워 적정 보험료를 부과할 수 없다는 이유로 2019년 1월부터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개별 산정 보험료가 전년도 건보 전체 가입자(직장가입자+지역가입자) 평균보험료에 못 미치면 평균보험료를 일률적으로 부과하기 때문이다.

즉, 외국인 지역가입자는 평균보험료 또는 그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산정 보험료가 평균보험료에 미달한다고 해서 일괄적으로 평균보험료를 부과하는 사례는 해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건보 당국은 1999년부터 2018년까지는 직장가입자를 뺀 전체 지역가입자만으로 평균보험료를 계산했지만, 2019년부터는 전체 직장가입자를 포함한 모든 건보 가입자로 확대해 평균보험료를 산출하는 방식으로 바꿔 평균보험료 수준 자체도 올라갔다.

월 평균보험료는 2017년 9만3천390원에서 2022년 12만4천770원 등으로 해마다 꾸준히 상승해 저소득 외국인 지역가입자 처지에서는 보험료 부담이 만만찮다.

특히 외국인 지역가입자에게 부과되는 월 평균보험료(2021년 기준 11만8천180원)는 내국인 등 전체 지역가입자의 월평균 부과액(2021년 9만7천221원)보다 월등히 많아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문심명 입법조사관은 "외국인 지역가입자에 대한 이런 보험료 산정방식은 불합리한 측면이 있어 수용성이 떨어지는 등 저소득층 외국인에게는 과도한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지역가입자의 건보료는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매기는데,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경우 보험료 부과기준이 되는 소득과 재산자료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국내 입국 이주민이 급증하다 보니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건보재정 적자가 갈수록 악화해 고육책으로 평균보험료를 일률적으로 부과하게 됐다"고 말했다.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경우 세대원 인정 범위도 내국인 지역가입자보다 훨씬 제한적이다.

내국인은 세대주와 동일 세대로 인정받는 범위가 직계존비속, 미혼인 형제자매,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존속 등으로 폭넓지만, 외국인은 원칙상 개별 외국인을 하나의 세대로 간주하되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만 동일 세대원으로 제한했다.

이 때문에 부모나 성인 자녀 등과 함께 사는데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 각자에게 1인당 부과되는 지역가입자 평균보험료 고지서 탓에 직계존속과 가족 단위로 체류하는 이주민들은 생계와 체류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관계자는 "외국인은 법무부에 등록한 거소지로 개인별로 관리하기 때문에 내국인과 같이 세대 단위로 관리하기 곤란한 데다 점검 결과 실제 생계를 함께 하지 않는데도 보험료 부담을 회피하려고 위장전입이나 주소 이전 등의 불법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세대원 인정 범위를 축소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건보료 체납 조치에서도 차별적 상황에 놓여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는 보험료를 체납하면 체납한 보험료를 완납할 때까지 보험급여가 중단돼 건강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내국인 지역가입자의 경우 보험료를 체납하더라도 체납 횟수가 6회 미만이거나 분할납부를 통해 1회 이상 체납 보험료를 내면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외국인은 보험료를 체납하면 체류 기간 연장에까지 불이익을 받게 된다.

외국인이 보험료를 50만원 이상 체납하면 그 체납정보를 법무부에 제공해 체류 연장심사에 활용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문 입법조사관은 "외국인의 소득과 재산을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로 평균보험료 이상을 부과하고, 세대 합가 범위를 제한하며, 체납 때 보험급여를 전혀 해주지 않는 등 내국인과 비교해 불이익은 커졌다"며 "외국인 대한 이런 차별적 조건을 완화해 외국인 건강보험제도의 합리성과 수용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21년 기준 등록외국인은 164만6천681명이며, 이 중에서 건강보험 가입자는 126만4천430명(76.8%)이다.

외국인 건보 가입자에게 부과된 보험료는 2020년 기준 1조5천417억원으로 2016년 7천756억원보다 98.7% 증가했다.

특히 외국인 지역가입자에게 부과된 보험료는 2016년 772억원에서 2020년 4천609억원으로 6배 가까이 늘었는데, 이는 건보 가입 의무화와 세대원(세대 합가 인정) 범위 축소 영향으로 분석된다.

건보의 재정 건전성은 덩달아 좋아졌다.

외국인 전체 가입자에게 나간 총급여비는 2020년 9천542억원으로 보험료로 거둔 금액(1조5천417억원)보다 훨씬 적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