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1914~1918년) 부상자는 약 2314만 명이었다. 2차 세계대전(1939~1945년)은 이보다 참혹했다. 사망자만 5000만~7000만 명일 정도로 인명 피해가 컸다. 부상자는 집계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1억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전쟁 이후 부상자들의 삶은 온전치 못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거동이 불편한 제대 군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항변을 사업 기회로 활용한 인물은 1906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나 영국에 살았던 버트 그리브스다. 그는 1948년 장애인도 운전할 수 있는 ‘인바카’를 생산했다. 인바카는 잔디깎이 엔진을 탑재한 1인승 초소형 자동차다. 배기량은 147cc에 불과했지만, 휠체어에 탄 상태에서 장애인이 차량을 운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동의 자유가 확보됐다. 부상을 입은 군인들은 이를 반겼다. 영국 연금부(보건복지부에 해당)는 인바카를 매입해 부상 군인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빌려줬다. 국가에 헌신한 군인들의 이동 복지를 위해 정부가 뛰어든 것이다.

인바카는 1970년대 초 500~600cc 엔진을 장착하며 성능을 강화했다. 1977년 영국 정부와의 계약이 끝날 때까지 50가지 이상 제품이 나왔다. 장애인용뿐 아니라 초소형 자가용이라는 점에서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안전 문제로 2003년 정부 소유의 인바카를 모두 회수해 폐기했다. 너무 오래전에 개발돼 정부의 충돌 안전 규정을 맞추지 못해서다. 다만 민간 소유의 인바카는 여전히 도로를 운행했다.

미국에도 다친 군인이 적지 않았다. 인바카를 눈여겨보던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는 장애인 전용 자동차 사업을 펼쳤다. 팔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위한 맞춤형 차량을 만들어 택시 또는 자가용으로 판매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시기는 1984년부터다. 장애인 이동권이 미국에서 주요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다. 1987년 주로 장애인용 자동차를 개조하는 미국 빈티지 모빌리티인터내셔널(VMI)은 크라이슬러 미니밴에 휠체어 탑승 시설을 장착했다. 바닥을 낮추고 휠체어를 위한 승하차 경사로 시스템을 설치했다. 장애인 이동권에 관한 논의가 더욱 거세지자 미국은 1990년 장애인통과법을 제정해 공공장소 등에 장애인 접근 시설을 의무화했다. 한국에선 국회에 아직 계류 중인 ‘유니버설 디자인 기본법’이 미국에선 이때 통과됐다.

역사에서 배우는 장애인 이동권 보장
영국도 2010년 포괄적 차별금지 법률인 평등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택시와 렌터카는 장애인을 위한 탑승 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했다. 장애인의 이동·여행을 차별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영국 택시는 모두 장애인·비장애인 겸용으로 전환됐다. 이용자 대부분은 비장애인이지만, 장애인도 길에서 손 흔들고 택시를 잡을 수 있다. 이 덕분에 장애인의 경제적 활동이 늘었다. 영국 정부는 운영하던 장애인 전용 콜택시를 없애고, 운영 비용을 장애인의 택시 요금 지원에 활용했다. 예산 절감과 기본 이동권 확보 과제를 한 번에 해결한 것이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