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까지 이른바 ‘여의도 정치’로 불리는 정당 정치와 인연을 맺을 기회가 없었다. 지난해 3월까지 평생 검사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 윤 당선인이 172석으로 국회를 지배하는 더불어민주당과 세력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민의힘을 어떻게 상대할지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협치를 통한 원활한 국정 운영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여의도 정치에 대한 윤 당선인의 접근법은 차기 정부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의 하나로 여겨졌다.

이런 맥락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정국은 윤 당선인에겐 시험대였다. 충분한 정치력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윤 당선인 의중에 따라 의원총회를 통과한 여야 합의안은 사실상 백지화됐다. 한국 정치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가 검수완박 법안 중재안을 도출한 지난 22일까지만 해도 윤 당선인은 관련 협상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일임했다. 권 원내대표와 당선인 측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중재안의 의총 통과 결과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뿐, 협상 과정을 전해 듣거나 본인의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정권 출범 이전이라도 중요 현안은 미리 보고받고 요구 사항을 제시했던 과거 대통령 당선인들과 다른 태도다.

파격이라면 파격인데,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혼선을 일으켰다. 의총에 참여했던 한 초선 의원은 “형사소송 관련 전문적인 내용이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윤 당선인이 당연히 동의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도 “윤 당선인과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보다 적극적인 토론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인의 분명한 입장은 여야 합의 사흘이 지나서야 나왔다. 지난 25일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과 장제원 비서실장이 잇달아 검수완박 합의 내용을 비판한 데 이어 오후에는 윤 당선인이 직접 권 원내대표를 만났다. 중재안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재논의 추진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당선인 입장이 검수완박 합의안에 대한 수용에서 비판으로, 민주당과 협상에 대해선 일임에서 적극 개입으로 달라진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치권 경험이 없는 ‘0선 리스크’가 현실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 간 협상과 결과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일반적인 행정 업무처럼 일임했다가 뒤늦게 개입에 나섰다는 것이다. 황태선 정치평론가는 “정치인과 정치인 간 협상 전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검찰 특유의 시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당선인의 태도가 과거 관행과 비교해 진일보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상대 당과의 협상을 원내대표에게 일임하는 것은 여당에 군림하려 했던 과거 대통령들과 비교해 나아진 것”이라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얼마든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윤 당선인의 뒤늦은 개입으로 국민의힘 원내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며 여야 간 협상은 한층 어려울 전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한 번 실패를 경험한 만큼 앞으로 윤 당선인은 보다 적극적으로 여의도 정치에 개입할 것”이라며 “그만큼 당의 협상력이 약화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협치에는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