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NOW
전기차 시대 ‘맹주’로 자리 잡은 현대차
전기차 시대 ‘맹주’로 자리 잡은 현대차
올해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가장 큰 이변은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의 ‘세계 올해의 차’ 수상과 기아 EV6의 ‘2022 유럽 올해의 차’ 수상이다. 자동차 변방국, ‘패스트 팔로워’ 이미지가 강하던 한국 자동차가 전기차 시대엔 품질로 독일, 미국, 일본 차량을 꺾었다는 점에서다.

아이오닉 5와 EV6가 세계인의 이목을 끈 이유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한 각종 신기술 때문이다. 차량 외부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V2L, 18분 만에 배터리를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800V 충전 시스템 등이 대표적이다.

깐깐한 시상식에서 쾌거

아이오닉 5는 지난 4월 13일 ‘2022 월드카 어워즈’에서 ‘세계 올해의 차’를 수상했다. 3월에는 기아 EV6가 ‘2022 유럽 올해의 차’를 수상하며 ‘북미 올해의 차’를 포함해 글로벌 3대 자동차 시상식에서 2관왕을 달성했다.

유럽 올해의 차는 1964년 시상을 시작한 이후 비유럽 브랜드에 유독 깐깐했다. 지난해까지 57년간 비유럽 브랜드가 유럽 올해의 차를 수상한 것은 10회뿐이다. 포드 5회, 도요타 3회, 닛산 2회. 유럽 브랜드는 벤츠 창업자 카를 벤츠가 1885년 내연기관차를 발명한 이후 130여 년간 엔진 시대를 지배한 만큼 콧대가 높았다. 북미 올해의 차, 세계 올해의 차 역시 마찬가지로 미국, 독일 브랜드의 주무대였다.

분위기가 백팔십도 바뀐 것은 지난해 전기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하면서부터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전통 브랜드가 허둥대는 사이 발 빠르게 나선 현대차그룹이 기회를 잡았다. 올해 유럽 올해의 차 최종 후보에 오른 7개 모델 중 6개가 전기차다. 세계 올해의 차에서도 아이오닉 5, EV6, 포드 머스탱 마하-E 등 전기차만 최종 후보에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도 유럽 올해의 차를 수상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그룹의 경쟁력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자동차 매체 톱기어가 2004년 현대차를 ‘바퀴 달린 냉장고 또는 세탁기’에 빗대며 조롱한 것을 감안하면 상전벽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 상은 현지에서 자동차를 구매할 때 주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해 향후 판매량 확대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힘

아이오닉 5와 EV6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제조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전기차를 제조하는 기업은 현대차·기아를 포함해 폭스바겐, 테슬라뿐이다.

E-GMP로 전기차를 만들면 기존 내연기관차에 배터리를 넣은 전기차보다 장점이 많다. 먼저, 앞뒤 바퀴 사이의 바닥에 무거운 배터리를 평평하게 배치할 수 있어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 가능하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서 부피를 많이 차지하던 엔진, 변속기, 프로펠러 샤프트(후륜구동 및 사륜구동 한정), 배기가스 계통의 부품 등이 필요 없기에 내부 공간을 더욱 넓게 쓸 수 있다. 하지만 내연기관차를 변형한 전기차는 배터리를 배치하는 공간을 따로 확보해야 하므로 실내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또 배터리를 아래에 깔아 차의 무게중심을 낮출 수 있다. 무게중심이 낮으면 고속 주행, 코너링에서 차가 안정적으로 주행한다. 유럽 올해의 차 심사위원들도 EV6의 이런 점에 주목했다. 심사위원단은 “다른 전기차와 달리 핸들링이 활기차고 운전대가 민첩하게 움직인다”고 평가했다.
가격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E-GMP는 배터리 셀과 모듈을 표준화해 배터리 파손 문제로 애프터서비스(A/S)를 받을 때 배터리 전체가 아닌 모듈 단위로 교체할 수 있어 수리 비용이 절감된다.

800V 충전 시스템 극찬

아이오닉 5와 EV6에 적용한 800V 고전압 충전 시스템도 자동차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시스템은 대다수 전기차에 쓰이는 400V에 비해 2배의 전류를 흘려보낼 수 있다. 같은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00V보다 크게 줄어든다. 오토모티브뉴스에 따르면 400V 전기차를 400km 주행거리가 나오도록 충전하면 40분 걸리는데, 800V는 15분이면 된다.

현재 800V 시스템을 적용한 전기차는 아이오닉 5, EV6, 아우디 e-트론 GT, 포르쉐 타이칸뿐이다. 이 중 판매 가격이 1억원 미만인 차량은 아이오닉 5와 EV6다. 업계에서는 800V 충전 기술이 대중화되는 2025년까지 현대차가 시장을 주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오토모티브뉴스는 “아이오닉 5가 경쟁력을 증명한 800V 시스템이 향후 대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800V 시스템을 이용하면 충전 시간이 빨라질 뿐 아니라 400V에 비해 케이블과 전선을 적게 쓰는 만큼 구리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자동차 중량도 줄어 400V 전기차보다 주행거리가 더 길어진다. 또 배터리 충전 온도를 최적화할 수 있어 열관리에도 유리하다.

전기차를 대형 배터리로 활용

전기차를 대용량 보조 배터리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V2L 기능도 호평을 받았다. E-GMP에는 전기차의 고전압 배터리와 보조 배터리를 모두 충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통합 충전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별도의 어댑터 없이도 차의 전력을 외부 기기에 공급할 수 있다.

V2L을 활용하면 최대 3.6kW 전력 내에서 각종 가전 기기를 연결해 야외 활동 시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배터리를 100% 충전할 경우 56m2 평형의 집에서 에어컨과 55인치 TV를 24시간 동안 작동할 수 있다. 충전이 필요한 다른 전기차에 전력을 공급할 수도 있다.

E-GMP에는 추운 겨울에도 배터리 성능을 유지해 원활한 충전이 이뤄지도록 도와주는 승온 히터를 적용했다. 또 구동 모터에 헤어핀 권선 기술을 적용하고, 모터의 열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유랭식을 사용해 모터의 성능과 효율을 높였다. 헤어핀 권선 기술은 헤어핀의 형상을 닮은 직사각형 단면의 코일을 활용한 구조를 뜻한다. 권선 저항을 줄여 효율을 더 높일 수 있는 기술이다.

E-GMP의 구동용 전기모터는 직류(DC)와 교류(AC)를 전환하는 인버터, 자동차 바퀴 회전수에 맞게끔 전기모터 회전수를 낮추는 감속기 등을 하나로 통합해 작고 가볍게 만들었다.
전기차 시대 ‘맹주’로 자리 잡은 현대차
김형규 한국경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