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진이 전천후 레이더 정찰위성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6호의 전자파 환경 시험을 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진이 전천후 레이더 정찰위성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6호의 전자파 환경 시험을 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군사적으로 정찰위성의 중요성을 일깨운 계기가 됐다. 산업적으로도 관련 기업의 발전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됐다. 수천 개의 군사·상업용 위성을 활용해 러시아 군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 발맞춰 우리 군도 최초 독자 정찰위성 ‘425 사업’의 후속 사업 규모를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키웠다. 군사위성이 차세대 반도체와 통신·항공우주·제어·계측 기술의 총결집체인 만큼, 위성 제작 기업과 연구개발(R&D) 기관에도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군이 2029년께부터 추가로 발사할 12기의 위성은 국가우주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가 지난해 말 향후 10년간 발사 예정이라고 밝힌 170여 기에 포함되지 않은 새로운 물량이다. 군 독자 정찰위성은 북한 위협을 실시간 탐지하고 선제 타격하는 군 대응 시스템(킬 체인)의 ‘눈’으로 불린다. 그동안 한국이 보유한 정찰위성은 관측 겸용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 시리즈뿐이었다.

지구 상공 500~600㎞에서 수십㎝ 크기 물체를 식별하는 정찰위성은 첨단기술의 총합체로 불린다. 기술 장벽이 높고 비용 부담이 큰 탓에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소수의 국가만 자체 군사용 정찰위성을 운용하고 있다. 합성개구레이더(SAR) 위성엔 차세대 먹거리인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가 대거 사용된다. 정찰·통신·항법위성은 킬체인과 KAMD(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의 핵심 인프라 역할도 맡는 까닭에 군사적·산업적 의미가 적지 않다.

흔히 정찰위성은 SAR 위성과 전자광학(EO) 위성으로 나뉜다. SAR 위성은 전자파를 지상 목표물에 쏜 뒤 반사돼 돌아오는 신호 데이터를 합성해 영상을 만든다. 주·야간, 악천후와 관계없이 정찰이 가능하다. SAR 위성 탑재체의 3요소인 안테나, 송·수신부, 제어장치엔 비메모리 반도체인 시스템 반도체가 많이 들어간다. 고해상도 카메라를 장착한 EO 위성은 SAR 위성보다 선명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지만, 밤이나 날씨가 궂을 땐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다.

425 사업으로 2024년 말부터 발사될 5기의 위성 중 SAR 위성 4기는 경사궤도를 돌며 한반도를 번갈아 가며 수시로 관측한다. EO 위성 1기는 북극과 남극 상공을 통과하는 극궤도를 돌며 임무를 수행한다. 일정한 낮 시간마다 한반도 일대를 촬영하기 위해서다. 임무 수행 고도는 지구 상공 500~600㎞ 저궤도다. 해상도는 가로·세로 픽셀 기준 30~50㎝다. 정찰위성으론 수준급이다. 5기 모두 1t 안팎 중대형 위성이다. 2024년부터 스페이스X의 팰컨 9 로켓에 실어 발사한다.

국방부가 425 사업 후속 위성 발사를 서두르는 이유는 정찰위성의 임무 수행 한계를 감안해서다. 북 전역을 상대로 24시간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위성 수명이 5년을 넘기 어렵다. 2024년 말부터 발사될 5기가 2029년엔 수명을 다하는 만큼, 임무에 차질이 없으려면 하루빨리 후속 위성 제작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425 위성 5기를 보완할 소형 군집위성 51기 개발도 한창이다. SAR 위성 4기의 한반도 방문 주기는 약 2시간인데 소형 군집위성들로 관측 공백 시간을 없앤다는 계획이다. 51기 중 11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EO 위성으로, 40기는 국방부가 SAR 위성으로 개발한다. EO 위성 11기는 KAIST 인공위성연구소가 설계 중이다. SAR 위성 40기는 연내 기본 설계를 위한 제안요청(RFP)을 마칠 예정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