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손정범이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8층 다산홀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피아니스트 손정범이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8층 다산홀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대철 한경디지털랩 기자
피아니스트 손정범(31)은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등 독일계 작곡가들의 작품 해석에 뛰어난 연주자로 정평이 나 있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도 불린다. 왜 이런 별명이 붙었는지는 그의 이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999년 여덟 살에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한 그는 열일곱 살이던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 입학했다. 독일로 유학을 떠난 건 스무 살 때였다. 뮌헨 국립음대에서 2012년부터 아르눌프 폰 아르님을 스승 삼아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2017년 독일 음악으로 승부를 겨루는 세계 최고 귄위의 뮌헨 ARD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201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제9회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에서도 “완벽한 기술에 더해 연령을 무색하게 만드는, 여유로움이 흐르는 음악을 들려줬다”는 찬사를 받으며 정상에 올랐다.

독일 레퍼토리에 정통한 손정범은 그중에서도 ‘베토벤 4번’을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협주곡으로 꼽는다. 그는 다음달 3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한경arte필하모닉의 ‘한국인을 이끄는 음악가’ 시리즈 공연에서 윌슨 응 서울시향 수석부지휘자와 이 작품을 협연한다. 28일 만난 그는 “독일에서는 베토벤 4번을 여러 차례 연주했지만 한국에선 처음”이라며 “제가 가장 아끼는 작품을 한국 팬에게 들려드리고 싶어 (연주곡에 넣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고 말했다.

베토벤이 남긴 피아노 협주곡 다섯 편 가운데 4번은 가장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손정범은 “균형미와 구조적인 아름다움으로 승부하는 베토벤의 다른 협주곡들과 달리 4번은 멜로디 자체가 돋보이는 곡”이라며 “선율이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흐른다”고 말했다.

그는 베토벤 협주곡 중 이 작품을 가장 마지막에 공부했다. 학생 시절에는 배우지 않았고, ARD 콩쿠르 우승 이후 연주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본격적으로 익혔다고 했다. “한창 공부할 때 스승님(아르님)과 선배들이 한목소리로 ‘4번이야말로 주옥같은 명곡이다. 쳐보면 안다’고 하셨습니다. 과연 그럴까 싶었죠. 3번과 5번도 훌륭하잖아요. 더 유명한 곡이기도 하고…. 실제로 연주해 보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더군요.”

손정범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으로 서정성을 꼽았다. “특별한 메시지나 내용을 담지 않은 고전음악은 청중마다 받아들이는 감성이 다릅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느냐, 그날 심리 상태가 어땠느냐에 따라 음악이 주는 감동이 달라진다는 얘기예요. 이 작품에는 정말 다양한 감정이 녹아 있어요. 누군가에겐 환희에 찬 음악으로, 다른 이에겐 너무 슬픈 음악으로 다가갑니다. 예습하고 공연장을 찾을 필요 없이 현장에서 음악이 주는 감동에 몸을 맡기면 됩니다.”

손정범은 지난해 5월 국립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브람스’에 ‘청년 브람스’ 역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극 중 브람스와 슈만의 소품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역이었다. “코로나19로 유럽 공연이 모두 취소되면서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한국에 오래 머무르던 시기였어요. 국립오페라단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고민하다가 피아노만 치면 된다고 해서 출연했는데, 결국 손을 휘젓는 연기까지 했죠. 신선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지난해 8월에는 슈베르트, 슈만, 베토벤 곡으로 독주회를 열었다. 올초부터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과 함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공연시장이 다시 열리면서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 라벨 협주곡도 연주했지만 그의 연주 레퍼토리에는 여전히 독일계 작품 비중이 높다.

“저는 아직도 신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청중과 직접 만나는 연주회장에선 솔직하게 ‘제가 가장 잘하는 음악’만 들려드리고 싶어요. 그러다 보니 독일 작품을 많이 연주하게 됐죠. 하지만 언제까지나 독일통으로 남을 생각은 없습니다. 좋은 시기가 되면 제가 공부를 많이 한 프랑스 음악 등 다른 색깔도 보여드려야죠.”

조동균/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