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기 대표 "평생 암벽등반하며 몸에 밴 안전의식…30년 플러스 성장·부채 제로 비결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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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 경영
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
대학 신입생때 첫 등반…50년동안 건강유지
작년에만 팔도명산 76회…암벽도 8회 올라
"난코스 '고빗사위' 넘는 집중력으로 위기 돌파"
성명기 여의시스템 대표
대학 신입생때 첫 등반…50년동안 건강유지
작년에만 팔도명산 76회…암벽도 8회 올라
"난코스 '고빗사위' 넘는 집중력으로 위기 돌파"
“암벽등반을 하는 산꾼들이 반드시 지키는 철칙이 있습니다. 하강 시 로프는 항상 옭매듭(두 겹으로 접어 쥔 안전 매듭)을 한다는 겁니다. 언제 무슨 사고가 날지 모르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업 경영과 비슷한 점이 많지요.”
28일 경기 성남의 산업용 컨트롤러 전문기업 여의시스템 본사에서 만난 성명기 대표(68·사진)는 암벽등반과 기업 경영의 공통점에 대해서 이같이 설명했다. 인터뷰에 앞서 악수하며 맞잡은 성 대표의 손에서 묵직한 악력이 느껴졌다. 180㎝ 키에 72.5㎏인 몸무게를 대학교 1학년 때부터 5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는 성 대표는 작년에만 설악산 등 전국 팔도의 명산을 76회 올랐다. 암벽등반은 8차례 했다. 한여름과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매월 1회씩 한 셈이다.
암벽등반의 매력으로 성 대표는 ‘몰입의 경험’을 말했다. 그는 “암벽등반 코스에서 가장 난도가 높은 부분을 일컫는 ‘고빗사위’를 넘는 순간에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아무것도 안 들린다”고 했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암벽과 자신의 손발에만 집중해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고빗사위를 넘는다는 것이다.
고빗사위를 넘는 순간 집중력을 끌어내는 경험은 회사 운영에도 도움이 됐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도 몰입해 고민하다 보면 돌파구가 보인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노사 분규로 위기를 맞았을 때 수백 번 문제 분석 끝에 도입한 성과공유제는 지금까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암벽등반을 하면서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성 대표는 기업 경영도 탄탄하게 하고 있다. 그가 1991년 10월 창업한 여의시스템은 지금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적이 없다. 금융회사 부채도 ‘0원’이다. 올해는 매출 530억원에 영업이익 50억원을 예상한다. 코스닥시장 상장도 앞두고 있다.
지금은 깎아지른 듯한 북한산 인수봉 200m 높이의 암벽도 로프와 카라비너(암벽등반용 연결기구)에 의지해 오르내리는 경험 많은 산꾼이 된 그도 처음에는 암벽이 무서워 벌벌 기었다. 어려서 몸이 약하고 겁이 많았던 성 대표는 컴컴하고 어두운 것을 무서워했다. 산길도 성 대표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연세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한 뒤 자신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에 과내 산악회인 무악산악회에 무턱대고 들어갔다. 그는 “등산이나 하는 줄 알고 들어갔는데 그렇게 암벽을 타는 곳인지는 꿈에도 몰랐다”며 웃었다. 얼떨결에 시작한 암벽등반에서 그는 자신을 담금질했다. 초보 시절인 대학교 1학년 11월 도봉산 선인봉 암벽에 매달려 떨다가 결국 해가 다 진 뒤에야 하강한 그를 책망하며 대학교 선배는 “짐꾼이나 해라”고 했다. 오기가 생긴 그는 주말뿐 아니라 주중에도 수업이 없는 날이면 암벽에 매달렸다. 2학년 여름방학 때는 인수봉과 선인봉 아래에 곰팡내 풍기는 텐트를 치고 20일 넘게 암벽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렇게 암벽등반가는 만들어졌다. 앞으로 암벽등반과 관련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80세가 될 때까지 건강하고 안전하게 암벽을 타는 것이 마지막 남은 소원”이라고 짧게 답했다.
성남=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암벽등반의 매력으로 성 대표는 ‘몰입의 경험’을 말했다. 그는 “암벽등반 코스에서 가장 난도가 높은 부분을 일컫는 ‘고빗사위’를 넘는 순간에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아무것도 안 들린다”고 했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암벽과 자신의 손발에만 집중해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고빗사위를 넘는다는 것이다.
고빗사위를 넘는 순간 집중력을 끌어내는 경험은 회사 운영에도 도움이 됐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도 몰입해 고민하다 보면 돌파구가 보인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노사 분규로 위기를 맞았을 때 수백 번 문제 분석 끝에 도입한 성과공유제는 지금까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암벽등반을 하면서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성 대표는 기업 경영도 탄탄하게 하고 있다. 그가 1991년 10월 창업한 여의시스템은 지금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적이 없다. 금융회사 부채도 ‘0원’이다. 올해는 매출 530억원에 영업이익 50억원을 예상한다. 코스닥시장 상장도 앞두고 있다.
지금은 깎아지른 듯한 북한산 인수봉 200m 높이의 암벽도 로프와 카라비너(암벽등반용 연결기구)에 의지해 오르내리는 경험 많은 산꾼이 된 그도 처음에는 암벽이 무서워 벌벌 기었다. 어려서 몸이 약하고 겁이 많았던 성 대표는 컴컴하고 어두운 것을 무서워했다. 산길도 성 대표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연세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한 뒤 자신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에 과내 산악회인 무악산악회에 무턱대고 들어갔다. 그는 “등산이나 하는 줄 알고 들어갔는데 그렇게 암벽을 타는 곳인지는 꿈에도 몰랐다”며 웃었다. 얼떨결에 시작한 암벽등반에서 그는 자신을 담금질했다. 초보 시절인 대학교 1학년 11월 도봉산 선인봉 암벽에 매달려 떨다가 결국 해가 다 진 뒤에야 하강한 그를 책망하며 대학교 선배는 “짐꾼이나 해라”고 했다. 오기가 생긴 그는 주말뿐 아니라 주중에도 수업이 없는 날이면 암벽에 매달렸다. 2학년 여름방학 때는 인수봉과 선인봉 아래에 곰팡내 풍기는 텐트를 치고 20일 넘게 암벽을 오르고 또 올랐다. 그렇게 암벽등반가는 만들어졌다. 앞으로 암벽등반과 관련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는지 물어봤다. 그는 “80세가 될 때까지 건강하고 안전하게 암벽을 타는 것이 마지막 남은 소원”이라고 짧게 답했다.
성남=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