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손정범의 '베토벤 협주곡 4번'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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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3일 '한국을 이끄는 음악가 시리즈'2 에서
윌슨 응· 한경arte필하모닉과 베토벤 4번 협연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선율미·서정성 돋보여
온전히 멜로디로 들어가 많은 것 펼칠 수 있어"
윌슨 응· 한경arte필하모닉과 베토벤 4번 협연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선율미·서정성 돋보여
온전히 멜로디로 들어가 많은 것 펼칠 수 있어"
피아니스트 손정범(31)은 베토벤,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등 독일계 작곡가들의 작품 해석에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도 불린다. 그의 이력과 수상 경력이 이런 평판을 뒷받침한다. 1999년 여덟 살에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한 그는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 입학해 강충모를 사사하며 학사과정을 졸업했다. 20세에 독일로 유학을 떠나 뮌헨 국립음대에서 2012년부터 아르눌프 폰 아르님을 사사하며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2017년 주로 독일계 작품들로 승부를 겨루는 세계 최고 권위의 뮌헨 ARD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위에 오르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한국인으로는 첫 우승이었다. 201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제9회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에서도 “파워풀하고 완벽한 기술에 더해 연령을 무색하게 만드는 여유로움과 자유롭게 흐르는 음악을 들려줬다”는 찬사를 받으며 정상에 올랐다. 이 대회 우승의 부상으로 주어진 독일 독주회 투어(슈투트가르트, 베를린, 보훔, 아헨 등)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독일계 레퍼토리에 정통한 손정범이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협주곡은 뭘까? 그는 주저 없이 ’베토벤 4번‘을 꼽았다. 다음 달 3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지휘자 윌슨 응과 함께하는 한경arte필하모닉의 ‘한국인을 이끄는 음악가’ 시리즈 두 번째 공연에서도 협연곡으로 이 작품을 연주하게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는 “평소 함께 무대에 서고 싶던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가장 애착하는 작품을 연주하게 돼 설렌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8층 다산홀에서 손정범을 만나 ‘베토벤 4번’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와 그의 음악인생을 들었다. -협연곡으로 ’베토벤 4번‘을 골랐는데.
“독일에서는 여러 차례 무대에서 연주한 작품이지만 한국에서는 기회가 닿지 않았다. 제가 가장 아끼는 작품을 한국 청중에게 꼭 들려드리고 싶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다섯 편 중에서 4번을 특히 더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
“1~5번 모두 음악회장에서 연주해 봤고, 너무나 훌륭한 곡들이다. 베토벤 소나타 32편이 전기, 중기, 후기로 나뉘어 작곡자의 인생을 보여주듯이, 협주곡들도 시대적 배경이나 작곡 시기에 따라 캐릭터가 조금씩 다 다르다. 다른 협주곡들은 형식과 구성미가 도드라진다면 4번은 무엇보다 멜로디 자체가 부각된다. 피아니스트로서 이 점이 가장 와닿았다. 선율적으로 마치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처리된 대목이 많다. 실제로 연주를 해보면 다른 곡보다 감정적으로 더 집중하게 된다. 5번 ’황제‘의 경우 너무 감정적으로 들어가면 놓치는 게 많아 적정 밸런스를 찾아야 하지만 4번은 온전히 멜로디 속으로 들어가 펼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4번을 공부하거나 연주할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베토벤 협주곡 중 가장 마지막에 공부한 작품이다. 학생 때 배운 적이 없고 2017년 ARD 콩쿠르 우승 이후에 공연할 기회가 생기면서 익히게 됐다. 선생님(아르님)과 동료들이 한목소리로 ’4번이야말로 주옥같은 명곡이다. 쳐보면 안다‘고 이전부터 얘기했는데, 과연 그럴까 싶었다. 대중에게 더 유명한 건 3번과 5번이고 훌륭하지 않나. 그런데 공부하고 연주하면서 ‘아 그래서 다들 그런 말을 했구나’ 하고 깨닫게 됐다. 가장 나중에 공부했는데 어떤 피아노 협주곡보다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이 됐다.“
-이 작품을 연주할 때 청중들이 이런 점을 더 주목해서 들어주셨으면 하는 포인트가 있나.
”감히 말하자면 브람스 협주곡이나 베토벤 ‘황제’ 같은 곡은 미리 예습하고 들으면 더 들리는 게 많다. 4번은 다른 것 같다. 가사가 없는 클래식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청중이 각자 처한 상황이나 심리상태, 감정선에 따라 모두 느끼는 게 다르다는 점인데 4번은 더 그렇다. 누구에게는 환희에 찬 음악일 수도, 누구에겐 너무나 슬픈 생각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들이 다 배치가 돼 있는, 정말 서정적인 협주곡이다. 그냥 오셔서 들어주시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게 생기지 않을까 하고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좋아한다. 제가 나름대로 공부해서 들려드리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 느껴지시는 대로 들으시면 좋겠다. “ -네 살 때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4세라는 나이는 악기를 배우기에 좀 이르지 않나.
”지금 제 손을 보시면 알겠지만 어릴 때부터 손이 두툼하고 좀 컸다. 할아버지께서 제 손을 보시고는 권투를 권하셨는데 ‘신세대’이셨던 어머니께선 그 말씀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보다. 운동 대신 음악을 시키겠다고 결심하셔서 집 근처 피아노 학원에 데리고 가셨다. 그 학원이 우연히도 보통 동네 학원이 아니라 어린이 교습 전문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보통 6, 7세에 피아노를 배우는데 저는 좀 일찍 시작했다.“
-고향인 대전을 떠나 서울과 독일 뮌헨과 뮌스터까지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배우기 위해 유학 생활을 해왔다. 어느 곳에서의 생활과 배움이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됐나.
”서초동에서 초등학교 2학년부터 강충모 선생님께 배웠고, 한예종을 졸업할 때까지 10여 년을 지냈다. 서초동은 예술의전당과 한예종 등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다양한 요소가 융합된 지역으로 북적북적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분위기가 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뭔가 바삐 움직이고 준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0세에 뮌헨에 갔는데 무척 화려한 도시다. 파리와 비슷하다고 할까. 여유로웠고 부유한 도시에서 살면서 그 문화를 살짝 맛만 봤다. 25세에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뮌스터에 갔는데 버스가 40분에 한 대씩 운행할 정도로 한적한 전원 마을이었다. 이렇게 하나로 응축된 듯한 바쁜 서초동과 화려한 뮌헨, 시골인 뮌스터 등 전혀 다른 곳을 하나씩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유학의 가장 큰 이유가 환경을 바꿔 경험해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뮌스터에 간 지 8개월 후에 ARD콩쿠르에서 우승했는데.
“뮌스터에서 온전히 저한테 집중하면서 성장도 한 것 같다. 풍요롭고 물가가 비싼 뮌헨에서는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유학생이 지내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가장 힘든 시기였다. 그랬던 생활에 대한 나름의 복수심도 작용해서 ARD콩쿠르에 참가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콩쿠르 참가비를 아끼려고 뮌스터에서 뮌헨에 갈 때 이탈리아로 멀리 돌아가는 가장 저렴한 10유로짜리 기차를 탔다. 빠른 교통편을 이용하면 6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17시간 걸렸다. 콩쿠르에 우승 후엔 그동안 수고한 나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일등석을 타고 6시간만에 뮌스터로 돌아왔다. (웃음)“
-ARD콩쿠르 우승 전과 후의 모습을 보니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다. 또 뭐가 달라졌나.
“그전에는 독일에서 비싼 미용실에 갈 여유가 없어 친구들끼리 서로 머리를 깎아주곤 했다. 하하. ARD콩쿠르 우승 전에는 환경에서 오는 성공에 대한 부담이 컸다. 부모님의 기대도 있고, 나이가 차면서 친구들에 비해 아직도 내가 벌이를 못하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도 들곤 했다. 콩쿠르 이후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공연을 계속하게 되면서 그런 게 해소가 됐다. 여유가 생기면서 공연과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지금도 ARD콩쿠르 당시 영상을 보면 너무 절박함이 느껴져 웃음이 나온다.“
-손정범 이후 두각을 나타낸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 프로필을 보면 ‘아르눌프 폰 아르님 사사’가 눈에 많이 띈다. 아르님 문하에서 좋은 연주자가 지속적으로 배출되는 이유가 있을까.
”스승님의 관심사가 오로지 음악과 피아노뿐이다. 심지어 양말을 신었는지도 잊고 온종일 음악만 생각하신다. 낮에 레슨을 세 시간이나 했는데도 해줄 말이 생각나면 새벽에도 전화하신다. 뮌스터에선 제가 살던 집과 선생님 댁이 가까워 수시로 찾아오시곤 했다. 제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좋아했는데 선생님께서 제가 없을 때 오셔서 게임기를 치우셨다. 선생님께서도 이전에 닌텐도에 빠져 한 달을 연습하지 못했던 경험을 들려주시며 ‘게임을 끊고 음악에 몰두하라’고 하셨다. 독일에서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고 아껴주셨다.“
-2020년 코로나19로 공연이 모두 취소됐는데 어떤 심경이었는가.
”콩쿠르 우승 이후 유럽에서 연주 활동을 하면서 한 달에 서너 번 한국에 오갈 때가 있을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4년여 동안 계속 숨이 차 있었다고 할까. 코로나19로 모든 공연이 취소됐을 때 일종의 패닉이 올 정도로 상실감이 컸던 건 물론이다. 독일에서 주로 연습했던 학교도 폐쇄됐다.
코로나로 정말 힘들었던 분들이 많으셨을 텐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에게는 휴식할 수 있어 도움이 된 측면도 있다. 피아노 연습도 쉬고 오로지 나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온종일 듣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연이 다시 시작돼 바쁘게 움직이게 되니까 멈췄던 자동차 시동을 다시 걸 때 부하가 걸리듯 힘들었다.“
-지난해 5월 국립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브람스’에 ‘청년 브람스’ 역을 맡아 화제가 됐는데.
”코로나로 공연이 거의 취소되면서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한국에 오래 머물고 있던 때였다. 국립오페라단에서 제안이 왔을 때 고민을 좀 했는데 피아니스트 역할로서 피아노만 치면 되는 무대라고 해서 도전했다. 피아노만 연주하는 독주 무대와 다르게 수십명의 스태프들이 공연을 위해 무대에 상주하고 공연에 함께 집중하는 현장이 신선한 경험이었다. 피아니스트로 서는 무대와 깊이가 똑같았다. 음악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100% 집중해야 하는 무대였다. 화이트 조명에서 연주하는 독주 무대와 달리 블루 조명 아래에서 연주했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주문도 늘어 손을 휘젓는다는가 하는 연기까지 했다. 재미있었다.“ -김영욱(노부스콰르텟 바이올린 멤버)과 함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진행 중이다. 이번 공연도 베토벤이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나 ‘독일 음악에 정통한 피아니스트’라는 색깔이 강한데.
”독일 음악 자체를 너무 좋아하고 선호한다. 저는 아직 중견 연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청중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제 공연 프로그램에 독일 작품을 꼭 넣는다.
이번에는 제가 작품을 선택했지만, 독일 작품으로 공연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 아무래도 제 출신 콩쿠르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믿고 맡겨주시니 감사한 일이지만 어느 시기가 오면 또 다른 색깔을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다른 색깔이라면 예를 들어 프랑스 음악 같은?
”그렇다. 지난해 하반기에 코리아체임버오케스트라(KCO)와 라벨 협주곡을 협연했지만, 프랑스 작품을 연주할 기회가 많지는 않다. 저는 사실 프랑스 곡을 정말 좋아하는데 공연 제안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제가 손도 두껍고 풍채도 있고 하니 외모에 편견들이 있으신 것 같다. (웃음) 나름 프랑스적 감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승님께 배운 프랑스 작곡가 작품도 꽤 되고, 혼자서 공부도 많이 했다.“
송태형/조동균 기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2017년 주로 독일계 작품들로 승부를 겨루는 세계 최고 권위의 뮌헨 ARD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위에 오르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한국인으로는 첫 우승이었다. 201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제9회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에서도 “파워풀하고 완벽한 기술에 더해 연령을 무색하게 만드는 여유로움과 자유롭게 흐르는 음악을 들려줬다”는 찬사를 받으며 정상에 올랐다. 이 대회 우승의 부상으로 주어진 독일 독주회 투어(슈투트가르트, 베를린, 보훔, 아헨 등)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독일계 레퍼토리에 정통한 손정범이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협주곡은 뭘까? 그는 주저 없이 ’베토벤 4번‘을 꼽았다. 다음 달 3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지휘자 윌슨 응과 함께하는 한경arte필하모닉의 ‘한국인을 이끄는 음악가’ 시리즈 두 번째 공연에서도 협연곡으로 이 작품을 연주하게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는 “평소 함께 무대에 서고 싶던 지휘자, 오케스트라와 가장 애착하는 작품을 연주하게 돼 설렌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8층 다산홀에서 손정범을 만나 ‘베토벤 4번’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와 그의 음악인생을 들었다. -협연곡으로 ’베토벤 4번‘을 골랐는데.
“독일에서는 여러 차례 무대에서 연주한 작품이지만 한국에서는 기회가 닿지 않았다. 제가 가장 아끼는 작품을 한국 청중에게 꼭 들려드리고 싶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다섯 편 중에서 4번을 특히 더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
“1~5번 모두 음악회장에서 연주해 봤고, 너무나 훌륭한 곡들이다. 베토벤 소나타 32편이 전기, 중기, 후기로 나뉘어 작곡자의 인생을 보여주듯이, 협주곡들도 시대적 배경이나 작곡 시기에 따라 캐릭터가 조금씩 다 다르다. 다른 협주곡들은 형식과 구성미가 도드라진다면 4번은 무엇보다 멜로디 자체가 부각된다. 피아니스트로서 이 점이 가장 와닿았다. 선율적으로 마치 바이올린 협주곡처럼 처리된 대목이 많다. 실제로 연주를 해보면 다른 곡보다 감정적으로 더 집중하게 된다. 5번 ’황제‘의 경우 너무 감정적으로 들어가면 놓치는 게 많아 적정 밸런스를 찾아야 하지만 4번은 온전히 멜로디 속으로 들어가 펼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4번을 공부하거나 연주할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
“베토벤 협주곡 중 가장 마지막에 공부한 작품이다. 학생 때 배운 적이 없고 2017년 ARD 콩쿠르 우승 이후에 공연할 기회가 생기면서 익히게 됐다. 선생님(아르님)과 동료들이 한목소리로 ’4번이야말로 주옥같은 명곡이다. 쳐보면 안다‘고 이전부터 얘기했는데, 과연 그럴까 싶었다. 대중에게 더 유명한 건 3번과 5번이고 훌륭하지 않나. 그런데 공부하고 연주하면서 ‘아 그래서 다들 그런 말을 했구나’ 하고 깨닫게 됐다. 가장 나중에 공부했는데 어떤 피아노 협주곡보다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이 됐다.“
-이 작품을 연주할 때 청중들이 이런 점을 더 주목해서 들어주셨으면 하는 포인트가 있나.
”감히 말하자면 브람스 협주곡이나 베토벤 ‘황제’ 같은 곡은 미리 예습하고 들으면 더 들리는 게 많다. 4번은 다른 것 같다. 가사가 없는 클래식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은 청중이 각자 처한 상황이나 심리상태, 감정선에 따라 모두 느끼는 게 다르다는 점인데 4번은 더 그렇다. 누구에게는 환희에 찬 음악일 수도, 누구에겐 너무나 슬픈 생각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들이 다 배치가 돼 있는, 정말 서정적인 협주곡이다. 그냥 오셔서 들어주시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게 생기지 않을까 하고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좋아한다. 제가 나름대로 공부해서 들려드리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 느껴지시는 대로 들으시면 좋겠다. “ -네 살 때 어머니의 권유로 피아노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4세라는 나이는 악기를 배우기에 좀 이르지 않나.
”지금 제 손을 보시면 알겠지만 어릴 때부터 손이 두툼하고 좀 컸다. 할아버지께서 제 손을 보시고는 권투를 권하셨는데 ‘신세대’이셨던 어머니께선 그 말씀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보다. 운동 대신 음악을 시키겠다고 결심하셔서 집 근처 피아노 학원에 데리고 가셨다. 그 학원이 우연히도 보통 동네 학원이 아니라 어린이 교습 전문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보통 6, 7세에 피아노를 배우는데 저는 좀 일찍 시작했다.“
-고향인 대전을 떠나 서울과 독일 뮌헨과 뮌스터까지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배우기 위해 유학 생활을 해왔다. 어느 곳에서의 생활과 배움이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됐나.
”서초동에서 초등학교 2학년부터 강충모 선생님께 배웠고, 한예종을 졸업할 때까지 10여 년을 지냈다. 서초동은 예술의전당과 한예종 등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다양한 요소가 융합된 지역으로 북적북적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분위기가 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뭔가 바삐 움직이고 준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0세에 뮌헨에 갔는데 무척 화려한 도시다. 파리와 비슷하다고 할까. 여유로웠고 부유한 도시에서 살면서 그 문화를 살짝 맛만 봤다. 25세에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뮌스터에 갔는데 버스가 40분에 한 대씩 운행할 정도로 한적한 전원 마을이었다. 이렇게 하나로 응축된 듯한 바쁜 서초동과 화려한 뮌헨, 시골인 뮌스터 등 전혀 다른 곳을 하나씩 살아가면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유학의 가장 큰 이유가 환경을 바꿔 경험해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뮌스터에 간 지 8개월 후에 ARD콩쿠르에서 우승했는데.
“뮌스터에서 온전히 저한테 집중하면서 성장도 한 것 같다. 풍요롭고 물가가 비싼 뮌헨에서는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유학생이 지내기에는 한계가 많았다. 가장 힘든 시기였다. 그랬던 생활에 대한 나름의 복수심도 작용해서 ARD콩쿠르에 참가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콩쿠르 참가비를 아끼려고 뮌스터에서 뮌헨에 갈 때 이탈리아로 멀리 돌아가는 가장 저렴한 10유로짜리 기차를 탔다. 빠른 교통편을 이용하면 6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17시간 걸렸다. 콩쿠르에 우승 후엔 그동안 수고한 나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일등석을 타고 6시간만에 뮌스터로 돌아왔다. (웃음)“
-ARD콩쿠르 우승 전과 후의 모습을 보니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다. 또 뭐가 달라졌나.
“그전에는 독일에서 비싼 미용실에 갈 여유가 없어 친구들끼리 서로 머리를 깎아주곤 했다. 하하. ARD콩쿠르 우승 전에는 환경에서 오는 성공에 대한 부담이 컸다. 부모님의 기대도 있고, 나이가 차면서 친구들에 비해 아직도 내가 벌이를 못하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도 들곤 했다. 콩쿠르 이후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공연을 계속하게 되면서 그런 게 해소가 됐다. 여유가 생기면서 공연과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지금도 ARD콩쿠르 당시 영상을 보면 너무 절박함이 느껴져 웃음이 나온다.“
-손정범 이후 두각을 나타낸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 프로필을 보면 ‘아르눌프 폰 아르님 사사’가 눈에 많이 띈다. 아르님 문하에서 좋은 연주자가 지속적으로 배출되는 이유가 있을까.
”스승님의 관심사가 오로지 음악과 피아노뿐이다. 심지어 양말을 신었는지도 잊고 온종일 음악만 생각하신다. 낮에 레슨을 세 시간이나 했는데도 해줄 말이 생각나면 새벽에도 전화하신다. 뮌스터에선 제가 살던 집과 선생님 댁이 가까워 수시로 찾아오시곤 했다. 제가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좋아했는데 선생님께서 제가 없을 때 오셔서 게임기를 치우셨다. 선생님께서도 이전에 닌텐도에 빠져 한 달을 연습하지 못했던 경험을 들려주시며 ‘게임을 끊고 음악에 몰두하라’고 하셨다. 독일에서 아버지 같은 분이셨다.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주고 아껴주셨다.“
-2020년 코로나19로 공연이 모두 취소됐는데 어떤 심경이었는가.
”콩쿠르 우승 이후 유럽에서 연주 활동을 하면서 한 달에 서너 번 한국에 오갈 때가 있을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4년여 동안 계속 숨이 차 있었다고 할까. 코로나19로 모든 공연이 취소됐을 때 일종의 패닉이 올 정도로 상실감이 컸던 건 물론이다. 독일에서 주로 연습했던 학교도 폐쇄됐다.
코로나로 정말 힘들었던 분들이 많으셨을 텐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에게는 휴식할 수 있어 도움이 된 측면도 있다. 피아노 연습도 쉬고 오로지 나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온종일 듣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연이 다시 시작돼 바쁘게 움직이게 되니까 멈췄던 자동차 시동을 다시 걸 때 부하가 걸리듯 힘들었다.“
-지난해 5월 국립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브람스’에 ‘청년 브람스’ 역을 맡아 화제가 됐는데.
”코로나로 공연이 거의 취소되면서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한국에 오래 머물고 있던 때였다. 국립오페라단에서 제안이 왔을 때 고민을 좀 했는데 피아니스트 역할로서 피아노만 치면 되는 무대라고 해서 도전했다. 피아노만 연주하는 독주 무대와 다르게 수십명의 스태프들이 공연을 위해 무대에 상주하고 공연에 함께 집중하는 현장이 신선한 경험이었다. 피아니스트로 서는 무대와 깊이가 똑같았다. 음악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100% 집중해야 하는 무대였다. 화이트 조명에서 연주하는 독주 무대와 달리 블루 조명 아래에서 연주했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주문도 늘어 손을 휘젓는다는가 하는 연기까지 했다. 재미있었다.“ -김영욱(노부스콰르텟 바이올린 멤버)과 함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진행 중이다. 이번 공연도 베토벤이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나 ‘독일 음악에 정통한 피아니스트’라는 색깔이 강한데.
”독일 음악 자체를 너무 좋아하고 선호한다. 저는 아직 중견 연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청중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제 공연 프로그램에 독일 작품을 꼭 넣는다.
이번에는 제가 작품을 선택했지만, 독일 작품으로 공연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 아무래도 제 출신 콩쿠르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믿고 맡겨주시니 감사한 일이지만 어느 시기가 오면 또 다른 색깔을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다른 색깔이라면 예를 들어 프랑스 음악 같은?
”그렇다. 지난해 하반기에 코리아체임버오케스트라(KCO)와 라벨 협주곡을 협연했지만, 프랑스 작품을 연주할 기회가 많지는 않다. 저는 사실 프랑스 곡을 정말 좋아하는데 공연 제안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제가 손도 두껍고 풍채도 있고 하니 외모에 편견들이 있으신 것 같다. (웃음) 나름 프랑스적 감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승님께 배운 프랑스 작곡가 작품도 꽤 되고, 혼자서 공부도 많이 했다.“
송태형/조동균 기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