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춘추전국시대’ 컬러강판 시장…삼성·LG發 가전수요 급증에 ‘과잉경쟁’[기업 인사이드]
코로나19 여파와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가전특수’로 활황세를 이어가고 있는 국내 컬러강판(사진) 시장이 철강사들의 공격적인 증설로 ‘과열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컬러강판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 왔던 동국제강이 후발업체에 1위 자리를 내주는 등 시장 판도도 급변하고 있다. 업체들의 과열경쟁 및 원자재값 상승 여파로 컬러강판 업체들의 올해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첫 1위 자리 내준 동국제강

28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컬러강판 생산량은 34만t으로, 전년 동기(31만3000t) 대비 8.5% 증가했다. 공식 통계가 나온 2015년 이후 최대치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주요 철강사들이 지난해부터 컬러강판 라인을 잇따라 증설하면서 물량이 크게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철강에 디자인을 입힌 컬러강판은 대리석, 나무 등 원하는 소재의 무늬와 질감을 구현할 수 있다. TV 냉장고 세탁기 등 고급 가전과 건축 내외장재에 주로 쓰인다. 삼성 LG 등 프리미엄 가전업체도 플라스틱보다 컬러강판을 선호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인 비스포크와 오브제에도 컬러강판이 사용된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이른바 ‘홈코노미’(재택경제)가 확산하면서 가전제품 수요가 늘자 컬러강판 몸값도 치솟았다. 컬러강판은 일반 철강재 대비 t당 가격이 최대 두 배 이상 높은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작년부터 건설 경기가 회복되면서 건축 내외장재에 쓰이는 컬러강판 수요도 늘고 있다. 코로나19 등 세균을 99.9% 사멸하는 항균 컬러강판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코로나19 선별진료소를 비롯해 수술실, 식품회사, 반도체 공장, 제약회사 등의 내외장재에 사용된다.

국내 컬러강판 생산량은 2018년 227만t에서 2019년 223만t, 2020년 204만t까지 급감한 뒤 2021년 238만t으로 반등했다. 컬러강판 수요가 급증하자 철강사들이 작년에 공격적인 컬러강판 증설에 나섰기 때문이다.

2020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컬러강판 시장은 동국제강이 독주하고, KG스틸(옛 동부제철)과 포스코스틸리온(옛 포스코강판)이 추격하는 ‘1강 2중’ 체제였다. 시장 점유율은 동국제강이 35%, KG스틸 25%, 포스코스틸리온 20% 순이었다. 하지만 ‘가전특수’에 힘입어 컬러강판이 확대되면서 시장 판도도 급변했다.
[단독]‘춘추전국시대’ 컬러강판 시장…삼성·LG發 가전수요 급증에 ‘과잉경쟁’[기업 인사이드]
철강업계에 따르면 동국제강의 시장 점유율은 2020년 35%에서 지난해 24%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3위였던 포스코스틸리온이 20%에서 27%로 늘어나 1위를 차지했다. 동국제강이 국내 컬러강판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내준 건 이번이 처음이다. 2위였던 KG스틸은 25%에서 26%로 점유율이 소폭 증가했다. 업계 4위와 5이인 세아씨엠과 아주스틸도 점유율이 각각 10%에서 14%, 3%에서 5%로 늘어났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컬러강판 몸값이 치솟으면서 동국제강이 주도하던 컬러강판 시장이 다섯 개 업체가 난립하는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국내 시장은 수익성 저하”

동국제강의 지난해 컬러강판 내수 평균 가격은 t당 145만6201원으로, 전년(119만8577원) 대비 21.5% 높다. 작년에도 프리미엄 가전제품 판매 증가세가 이어지면서 컬러강판 수요 대비 공급이 여전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KG스틸이 전년 대비 30만t을 늘린 것을 비롯해 대부분의 업체들이 공격적으로 컬러강판 생산량을 확대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컬러강판 업체의 연간 생산능력은 △동국제강 85만t △KG스틸 80만t △포스코스틸리온 35만t △세아씨엠·아주스틸 22만t 등의 순이다.

문제는 올해부터다. 우선 컬러강판 기초 철강재인 열연코일 가격이 올 들어 20% 이상 급등했다. 같은 기간 도금에 쓰이는 아연과 알루미늄 가격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제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 철강업계의 공통된 설명이다.

가전제품 수요가 계속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점도 수익성 저하를 우려하는 또 다른 이유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통상 가격이 비싼 프리미엄 가전제품은 소비자들의 교체 주기가 짧지 않아 내수시장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국내 컬러강판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동국제강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경쟁사들의 공격적인 설비 증설로 수익성 저하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하겠다는 것이 동국제강의 계획이다. 지난해 동국제강의 컬러강판 수출 판매 비중은 62%로, 전년(55%) 대비 7%포인트 늘었다.
[단독]‘춘추전국시대’ 컬러강판 시장…삼성·LG發 가전수요 급증에 ‘과잉경쟁’[기업 인사이드]
동국제강은 지난 27일 베트남 현지 컬러강판 스틸서비스센터 VSSC(사진)의 지분 15%를 인수했다. 스틸서비스센터는 코일 형태로 출하되는 강판을 가져다 고객이 원하는 길이와 넓이로 잘라주는 가공센터다. VSSC를 거점 삼아 베트남 현지 프리미엄 컬러강판 신수요 발굴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현재 북미, 유럽, 대양주 등 80개국 200여개 거래처에 컬러강판을 공급하고 있다”며 “9개 라인에서 생산한 1만여종의 다품종 소량생산 제품을 통해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