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누가 서구 세계를 공격하는가…치밀하게 진행된 문화 전쟁
《유럽의 죽음(The Strange Death of Europe)》으로 유럽 사회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더글러스 머리가

《서구를 향한 전쟁(The War on the West)》이란 책으로 돌아왔다.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정치평론가인 머리는 전작에서 유럽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이민 문제를 집중 취재한 뒤 정체성 혼란으로 인해 유럽이 죽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28일 영국에서 출간된 신간은 서구 엘리트 중심적인 시각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 책은 “최근 몇 년 동안 반(反)서구 수정주의자들이 집권하면서 서구를 향한 시각에 커다란 문제가 생겼다”며 “지금이야말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인류의 역사가 노예제, 정복, 편견, 대량 학살, 그리고 착취로 점철돼 있다면, 왜 서구 세계만 유독 비난받아야 하는가?”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누가 서구 세계를 공격하는가…치밀하게 진행된 문화 전쟁
저자의 도발적인 문제 제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서구 문화를 찬양하는 것은 얼마든지 인정하면서, 왜 그들의 결점과 범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증오심의 표현’이라고 비난하는가?”로 이어진다. 그는 이성주의, 민주주의, 과학, 진보, 시민사회 등 그동안 서구 세계가 일궈놓은 중요한 철학과 가치에 대한 비이성적인 내부 공격이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직하지 않은 학자들과 증오심을 조장하는 세력들 그리고 서구에 적대적인 국가들이 서구 세계 내부의 전쟁을 부추기고 있고, 이로 인해 서구 세계가 농락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30년 전 미국 스탠퍼드대 학생 시위대는 ‘서양 문화(Western culture)’ 과목을 없애줄 것을 학교에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들은 대학에서 서양의 규범과 전통만을 가르치는 것을 문제 삼았다. 스탠퍼드대는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서양 문화 연구를 여러 문화 연구로 대체했다. 다른 대학들도 스탠퍼드대의 결정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미국 대학에서 서양 사상, 서양 문화, 서양 예술, 서양 철학 등은 비인기 과목이 됐다. 서양의 전통을 가르치는 것은 모멸감과 폭력에 시달리는 일이 됐다. 중립적인 시각에서 서양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을 향한 협박과 명예 훼손도 잇따르고 있다.

책은 서구 세계를 향한 일종의 ‘문화 전쟁’이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에는 여전히 무자비한 강제 수용소가 존재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부당한 인권 문제나 열악한 노동 현장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값싼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을 거부감 없이 구매하고 있다. 중동과 인도,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인종차별이 만연하지만, 애써 입을 다물고 있다. 책은 서구 세계 내부에서 위선적이고 일관성 없는 반서구적인 수사와 평등·인권·정의를 가장한 일방적이고 부당한 주장들이 확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런 함정에 속아 서양인 스스로 자신들을 비하하고 있다고 푸념한다.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누가 서구 세계를 공격하는가…치밀하게 진행된 문화 전쟁
데일리 메일이 ‘올해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추천하고 보수 잡지 스펙테이터는 ‘어리석은 좌파를 향한 반격’이라고 추켜세우는 등 영국 주요 언론은 벌써부터 《서구를 향한 전쟁》 띄우기에 나선 모양새다. 이 책의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궁금해진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