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이어진 가전 특수로 ‘슈퍼 호황’을 누리던 국내 컬러강판 시장이 철강사들의 공격적인 증설로 과열되는 모양새다. 컬러강판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동국제강이 후발업체에 1위 자리를 내주는 등 시장 판도도 급변하고 있다. 업계에선 강판업체의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업체들의 과열 경쟁에 원자재값 상승 여파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1위 자리 내준 동국제강

동국제강, 컬러강판 '절대 강자' 지위 흔들
29일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국내 컬러강판 생산량은 34만t으로, 전년 동기(31만3000t) 대비 8.5% 증가했다. 공식 통계가 나온 2015년 이후 최대치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주요 철강사가 지난해부터 컬러강판 라인을 잇달아 증설하면서 물량이 많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철강에 디자인을 입힌 컬러강판은 대리석, 나무 등 원하는 소재의 무늬와 질감을 구현할 수 있다. TV 냉장고 세탁기 등 고급 가전과 건축 내외장재에 주로 쓰인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프리미엄 가전 브랜드인 비스포크와 오브제에도 컬러강판이 사용된다. 코로나19 여파로 이른바 ‘홈코노미(재택경제)’가 확산하면서 가전제품 수요가 늘자 컬러강판 몸값도 치솟았다. 컬러강판은 일반 철강재 대비 t당 가격이 최대 두 배 이상 높은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2020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컬러강판 시장은 동국제강이 독주하고 KG스틸(옛 동부제철)과 포스코스틸리온(옛 포스코강판)이 추격하는 ‘1강 2중’ 체제였다. 시장 점유율은 동국제강 35%, KG스틸 25%, 포스코스틸리온 20% 순이었다. 하지만 컬러강판 시장에 호황이 찾아오면서 시장 판도가 급변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동국제강의 시장 점유율은 2020년 35%에서 지난해 24%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3위이던 포스코스틸리온의 점유율이 20%에서 27%로 늘어나 1위를 차지했다. 동국제강이 국내 컬러강판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내준 건 이번이 처음이다. 2위이던 KG스틸은 25%에서 26%로 점유율이 소폭 증가했다. 업계 4위와 5위인 세아씨엠과 아주스틸도 점유율이 각각 10%에서 14%, 3%에서 5%로 늘어났다.

“국내 시장은 수익성 저하”

동국제강의 지난해 컬러강판 내수 평균 가격은 t당 145만6201원에 달했다. 컬러강판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면서 평균 가격이 전년(119만8577원)보다 21.5% 올랐다.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KG스틸이 전년 대비 생산량을 30만t 늘리는 등 철강업계의 증설 경쟁이 본격화했다.

문제는 올해부터다. 컬러강판 기초 철강재인 열연코일 가격이 올 들어 20% 이상 급등했다. 도금에 쓰이는 아연과 알루미늄 가격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급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철강업체들은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제품 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가격을 올렸다가는 고객사를 빼앗길 수 있어서다.

가전제품 수요가 지속될지도 불투명하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가격이 비싼 프리미엄 가전제품은 소비자의 교체 주기가 짧지 않아 내수시장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컬러강판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동국제강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수출 중심으로 사업모델을 바꿔 수익성을 지키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동국제강의 컬러강판 수출 판매 비중은 62%로, 전년(55%) 대비 7%포인트 늘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