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제 국제경쟁작…"한국과 일본 단일민족 인식 강해" '10000:44'.
2019년 일본에서 난민 신청을 한 1만여 명 가운데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단 44명이었다.
승인율 0.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그중 터키에서 일본으로 입국한 쿠르드족이 난민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쿠르드족은 약 4천 년 전부터 고유의 언어와 생활양식을 지키며 살았지만 독립된 국가를 가지지 못해 중동 지역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쿠르드족이 가장 많이 사는 터키에서는 독립을 원하는 이들을 향한 차별과 억압이 빈번히 이뤄진다.
다큐멘터리 '도쿄의 쿠르드족'은 터키에서 탄압받다 일본으로 도망 온 쿠르드족과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최근 개막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국제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영화제 참석차 전주를 방문한 휴가 후미아리 감독과 우에야마 에미 프로듀서를 영화의거리 한 카페에서 만났다.
휴가 감독은 "시리아 내전 때 상당한 난민이 발생했는데도 일본의 난민 승인율이 1%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뉴스를 통해 알게 됐다"며 "일본은 왜 이렇게 난민을 몰아내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영화를 기획하면서 여러 국가에서 온 난민을 만났습니다.
그중에서도 쿠르드족 출신 10대 소년들의 이야기를 하기로 한 건,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시리아, 이라크로 가서 이슬람국가(IS)와 싸우고 싶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일본에 있어도 미래를 꿈꿀 수 없다면서요.
" 다큐멘터리는 대학생이 되고 싶은 열아홉 살 라마잔과 철거 현장에서 일하며 모델을 꿈꾸는 열여덟 살 오잔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들은 아주 어릴 적 가족을 따라 일본으로 도망쳐온 이후 여러 차례 난민 신청을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난민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두 사람은 일본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임시'로 일본에서 거주할 수는 있지만, 경제활동을 할 수 없고 언제 갑자기 수용 시설에 구금될지 모른다.
그래서 라마잔과 오잔이 영화를 통해 얼굴을 드러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오잔의 경우 법을 어기고 일을 하는 모습도 여과 없이 나온다.
휴가 감독은 "이들이 출연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우린 여기에 존재한다'는 걸 전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오잔이 한 번은 '나는 벌레보다 가치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했어요.
아무도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서요.
라마잔은 신분 때문에 대학에서 입학을 계속 거절당하다가 결국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을 해줬더니 '희망이고 뭐고 날 안 받아주는 건 당신의 나라가 아니냐'라는 답이 돌아오더군요.
일본인으로서 무척 미안하고 힘들었습니다.
"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일본과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시리아 난민이 국내로 입국하자 반대 여론이 들끓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해주면 안 된다는 청원도 올라왔다.
우리나라의 난민 승인율도 일본과 같은 0.4%다.
휴가 감독은 "한국과 일본 모두 '단일민족' 인식이 강한 편이어서, 나와 다른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우에야마 PD는 "단일민족이라는 건 환상"이라며 "외국인을 바라보는 잘못된 편견 역시 난민 승인율이 현저히 낮은 이유 중 하나"라고 짚었다.
두 사람은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이 난민을 받아들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휴가 감독은 "난민에 대해 안다면 이들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난민을 공감하고 포용할 수 있도록 우리 영화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영화는 지난해 일본에서 개봉한 뒤 현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시사회 후 일본의 한 기자는 법무 대신에게 라마잔과 오잔처럼 10대 이전부터 일본에 들어와 사는 난민들이 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없는지 해명하라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우에야마 PD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떠올렸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수많은 피란민이 발생했기 때문에 '도쿄의 쿠르드족'이 갖는 의미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수용하기 위해 이들에게 난민에 준하는 자격을 부여하는 준난민 제도 신설을 검토 중이다.
휴가 감독과 우에야마 PD는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는 것은 기쁘고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라마잔과 오잔은 여전히 난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허탈하다고 말했다.
우에야마 PD는 "일본이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도 미얀마, 쿠르드족 등 다른 난민들은 외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라며 "우크라이나에 세계의 이목이 쏠린 상황이기 때문에 단순히 '보여주기식'의 치졸한 정책을 펼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