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혁 소설집 ‘스마일’…죽은 이의 얼굴에서 삶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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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소설집 <스마일> 펴낸 김중혁 작가
‘타인의 죽음’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 5편 담아
‘타인의 죽음’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 5편 담아
“사람들은 마지막 얼굴로 자신의 모든 인생을 표현합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괴로웠던 시절의 고통, 마지막 순간의 회한이 그 얼굴에 다 들어 있어요. 얼굴 하나로 최소한 30년의 시간을 표현하는 겁니다. 볼 수 있으면 봐야죠.”
옆 승객 잭의 권유에 못 이겨 데이브 한은 비행기에서 내릴 때 커튼 너머로 시체를 5초간 보게 된다. 비행 도중 갑자기 사망한 그 승객은 마약이 담긴 콘돔을 여러 개 삼켰다가 약물 중독으로 심장 발작을 일으킨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남자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묘한 미소가 얼굴에 어려 있었기 때문이다.
개성 넘치는 인물과 재치 있는 서사로 고유한 문학 세계를 구축해온 소설가 김중혁이 다섯 번째 소설집 <스마일>(문학과지성사)로 돌아왔다. 2015년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단편집이다. 2000년 등단한 그는 젊은작가상 대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받은 중견 작가다.
비행기 승객의 죽음을 다룬 표제작 ‘스마일’처럼 책 속 인물들은 모두 타인의 죽음과 마주한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는 플라스틱 폐기물로 가득한 섬에 조난됐다가 돌아온 조이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한다.
“생각해 보면 조이 말대로 일회용이긴 하지. 죽으면 끝나는 거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조이가 죽은 이유를 쫓던 인물들은 인간 역시 지구 입장에선 ‘일회용 쓰레기’와 다르지 않음을 자조한다. 2019년 심훈문학대상 수상작인 ‘휴가 중인 시체’에서는 주원이란 인물이 ‘나는 곧 죽는다’라는 플래카드를 붙인 45인승 버스를 몰고 전국을 돌아다닌다. 과거 그는 전날 먹은 술의 취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통학버스를 운전하다 한 아이를 죽일 뻔했다. 죄책감을 느낀 그의 내면엔 죽음이 각인되어 버린다. “나는 곧 죽을 거니까요. 죽을 거니까 계속 돌아다니는 거예요. 한군데 있으면 자꾸 생각하게 되니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책은 죽음을 다루고 철학적 질문을 던지지만 그 무거움에 끌려 들어가지 않는다. 작가 특유의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문체를 잃지 않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숙명으로서의 죽음과 거기서 비롯되는 새로운 가능성을 포착한다.
“그거 알아? 산에 불이 나면 많은 나무가 타 죽잖아. 그런데 그 아래에서는 새로운 생명들이 힘차게 자라난대. 잿더미가 나무를 키우는 거야.”(‘차오’ 중)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옆 승객 잭의 권유에 못 이겨 데이브 한은 비행기에서 내릴 때 커튼 너머로 시체를 5초간 보게 된다. 비행 도중 갑자기 사망한 그 승객은 마약이 담긴 콘돔을 여러 개 삼켰다가 약물 중독으로 심장 발작을 일으킨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남자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묘한 미소가 얼굴에 어려 있었기 때문이다.
개성 넘치는 인물과 재치 있는 서사로 고유한 문학 세계를 구축해온 소설가 김중혁이 다섯 번째 소설집 <스마일>(문학과지성사)로 돌아왔다. 2015년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이후 7년 만에 내놓은 단편집이다. 2000년 등단한 그는 젊은작가상 대상, 이효석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받은 중견 작가다.
비행기 승객의 죽음을 다룬 표제작 ‘스마일’처럼 책 속 인물들은 모두 타인의 죽음과 마주한다.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는 플라스틱 폐기물로 가득한 섬에 조난됐다가 돌아온 조이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한다.
“생각해 보면 조이 말대로 일회용이긴 하지. 죽으면 끝나는 거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조이가 죽은 이유를 쫓던 인물들은 인간 역시 지구 입장에선 ‘일회용 쓰레기’와 다르지 않음을 자조한다. 2019년 심훈문학대상 수상작인 ‘휴가 중인 시체’에서는 주원이란 인물이 ‘나는 곧 죽는다’라는 플래카드를 붙인 45인승 버스를 몰고 전국을 돌아다닌다. 과거 그는 전날 먹은 술의 취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통학버스를 운전하다 한 아이를 죽일 뻔했다. 죄책감을 느낀 그의 내면엔 죽음이 각인되어 버린다. “나는 곧 죽을 거니까요. 죽을 거니까 계속 돌아다니는 거예요. 한군데 있으면 자꾸 생각하게 되니까 생각하지 않으려고.”
책은 죽음을 다루고 철학적 질문을 던지지만 그 무거움에 끌려 들어가지 않는다. 작가 특유의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문체를 잃지 않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숙명으로서의 죽음과 거기서 비롯되는 새로운 가능성을 포착한다.
“그거 알아? 산에 불이 나면 많은 나무가 타 죽잖아. 그런데 그 아래에서는 새로운 생명들이 힘차게 자라난대. 잿더미가 나무를 키우는 거야.”(‘차오’ 중)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