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홈쇼핑은 ‘롯데 제국 안의 독립국’으로 불린다. 계열상 유통HQ(사업군)에 속해 있지만,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송쟁이’들이 주력인 터라 백화점 등 다른 유통 계열사와 조직 문화의 결이 다르다.

지분 분포상으로도 롯데가 온전히 장악하지 못한 구조다. 롯데홈쇼핑의 2대주주는 27.99%를 보유한 태광산업이다. 최근 유통업계의 시선을 끌고 있는 롯데홈쇼핑의 잇단 ‘마케팅 실험’은 이 같은 독립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유통업계의 시각이다.

그룹 안에서 롯데홈쇼핑의 독립성을 배가시키는 결정적 존재는 이완신 사장이다. 이 사장은 2017년 롯데백화점에서 홈쇼핑 대표이사가 되면서 자리를 옮겼다. 롯데의 유통 계열사 가운데 최장수이자, 마지막 남은 롯데 공채 출신 사장이다.
가상인간·NFT…롯데홈쇼핑 '이유있는 파격'

연이은 ‘최초’ 시도

롯데홈쇼핑은 대체불가능토큰(NFT) 마켓플레이스(장터)를 개설했다고 2일 밝혔다. 모바일 쇼핑 앱에 ‘NFT 숍’을 개설해 원화로 다양한 NFT 콘텐츠를 거래할 수 있도록 했다.

정보기술(IT) 업종이 아닌 곳에선 첫 시도다. 진호 롯데홈쇼핑 디지털사업부문장은 “세계 최대 NFT 마켓플레이스인 오픈씨에서도 2차 거래가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통업계에선 언뜻 생뚱맞아 보이는 롯데홈쇼핑의 실험은 4년 전부터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최근 대박을 터뜨린 벨리곰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가상인간·NFT…롯데홈쇼핑 '이유있는 파격'
이 사장 등 롯데홈쇼핑 경영진은 2018년 10월 한 사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캐릭터 사업을 매출이 나지 않는데도 묵묵히 지원했다. 그 덕분에 벨리곰(사진)은 3년여 만에 110만 명의 SNS 팬덤을 보유한 ‘대세’ 캐릭터로 성장했다. 지난달 1~24일 잠실 롯데월드 광장에서 열린 대형 벨리곰 전시엔 총 325만 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취임 일성으로 ‘미디어 커머스로의 전환’을 선언한 이 사장은 롯데홈쇼핑의 체질을 단순 유통에서 메타버스 선구자로 바꾸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진 부문장은 “롯데홈쇼핑은 모든 것을 맨땅에서 시작한다는 ‘제로 투 베이스’ 정신으로 디지털 전환을 실행하고 있다”며 “벨리곰을 비롯해 롯데홈쇼핑의 가상 인간 ‘루시’ 등은 메타버스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관문이고, NFT는 가상을 현실과 이어주는 매개체라는 판단 아래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홈쇼핑은 굴지의 게임업체와 제휴해 메타버스용 게임도 공동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풍 막고, 젊은피 키워

이 사장은 목표 달성을 위해 최대한 외부 간섭을 막고, 내부적으론 젊은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벨리곰 유튜브 동영상이 나오고 한참 인기를 끌 때까지 아무도 롯데홈쇼핑의 작품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이 신규 사업을 할 때마다 ‘롯데’라는 레거시(유산)를 강조한 것과 대조적이다.

대표 직속으로 ‘주니어 보드’라는 조직을 구성한 것도 이 사장의 아이디어다. 사내 MZ세대(밀레니얼+Z세대)로만 구성해 아이디어를 직보할 수 있게끔 했다.

작년 9월엔 2030 타깃의 자체상품(PB)을 개발하기 위해 전담 개발팀을 신설했다. 팀장을 포함한 전원이 MZ세대다. 2020년 7월엔 사내 주니어급 핵심 인재를 발굴해 전문가로 육성하기 위한 ‘인재사관학교’도 신설했다.

롯데홈쇼핑의 활발한 행보는 그룹 내 역학 구도에도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타버스만 해도 신동빈 롯데 회장이 올해 계열사에 가장 강조하는 신사업 중 하나다. 롯데 관계자는 “현재 그룹 차원에서 메타버스는 롯데정보통신이 주도하고 있다”며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등 테크놀로지 개발에 치중하고 있는데, 앞으로 롯데홈쇼핑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그룹의 메타버스 전략에도 영향을 끼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