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으로 양분돼온 국내 대형 특수선(군함) 시장에 최근 중견 조선사인 삼강엠앤티가 가세하면서 조선 방산업체들의 생존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연간 군함 시장(매출 기준)이 2조원 안팎에 불과한 상황에서 방산업체들이 ‘수주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단 수주하고 보자’식의 업체 간 과당경쟁과 저가 응찰이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고사 상태에 빠진 조선 방산업체를 살리기 위해선 과감한 업체 간 통폐합을 통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조 시장 놓고 '나눠먹기 출혈 경쟁'…"군함부문 합쳐 경쟁력 높여야"

출혈 과당경쟁으로 얼룩

2일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군함 분야 방산업체 총매출은 2조404억원, 영업이익은 -1384억원이다. 영업이익률은 -6.8%로, 최근 5년 새 가장 낮았을 뿐 아니라 방산 전체 영업이익률(3.7%)을 크게 밑돌았다.

전문가들은 국내 군함 시장이 협소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업체들의 출혈경쟁으로 고사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특히 조선 방산업체들이 번갈아 가며 군함을 수주하는 이른바 ‘교호 수주’가 출혈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서 군함을 건조할 수 있는 방산전문업체는 대우조선 현대중공업 HJ중공업 삼강엠앤티 등 여덟 곳이다. 배수량 3000t급 이상 대형선은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이 번갈아 가며 수주했다. 중소형 조선사는 경비함 등 중·소형선이 주력이었다.

대표적 사례가 1980년대 초반부터 우리 해군이 운용 중인 주력 함정 울산급 호위함이다. 노후한 배치Ⅰ 함정을 대체하기 위해 2010년대 중반부터 배치Ⅱ·Ⅲ 호위함이 잇달아 건조되고 있다. 배치는 동일 성능으로 건조하는 함정의 묶음으로, 배치Ⅰ에서 Ⅱ, Ⅲ로 갈수록 성능이 개선된다. 같은 배치 함정이라도 배를 건조하는 조선사는 제각각이다.

배치Ⅱ 1·2번함은 대우조선, 3·4번함은 현대중공업, 5·6번함은 대우조선, 7·8번함은 현대중공업이 수주했다. 배치Ⅲ는 기본설계와 1번함(선도함)은 현대중공업이 맡았다. 하지만 올 1월 발주된 2번함은 중견 조선사인 삼강엠앤티가 수주했다. 1월 해군이 발주한 3500t급 최신형 호위함 ‘울산급 BATCH-Ⅲ’ 한 척을 3353억원에 따낸 것이다. 삼강엠앤티의 수주에는 경쟁사 대비 낮은 입찰 가격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가 응찰은 낙찰 후 협력업체를 쥐어짜 비용을 떠넘기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방산비리 의혹에 휘말릴 것을 의식한 방위사업청은 정성적 해석이 필요한 기술력보다 가격을 낙찰의 1순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나눠먹기식 수주 관행 고착”

가격을 앞세운 저가 입찰은 의도치 않은 교호 수주를 초래했다. 군함 시장은 육상 무기와 달리 군 발주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군함시장 매출은 ‘군 예산’이라는 뜻이다. 2016년 2조2269억원이던 조선 방산업체 매출은 2020년 2조404억원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국내 1위 함정 건조업체인 대우조선의 2020년 군함 분야 매출은 8000억원가량에 불과했다. 전체 인력도 2016년 4468명에서 2020년 4617명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조선업계는 현 인력 구조상 교호 수주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같은 배치라 해도 현 인력 규모로는 1번함부터 8번함까지 모두 건조할 수 없기 때문에 인력 충원이 가능한 범위에서만 수주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후속함은 업체가 사실상 스스로 입찰을 포기하는 ‘나눠먹기식 수주’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 통설이다. 업계 관계자는 “발주처인 방위사업청과 여론을 의식해 직전 함정 대비 가격을 높여 쓰는 건 불가능하다”며 “담합 의혹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직전 함정과 비슷한 가격을 써내는 것이 관행”이라고 전했다.

“통폐합이 근본적 해법”

방산 전문가들은 적자 수주가 계속되면 함정산업의 경쟁력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락할 것이라며, 해법은 국내 업체 간 ‘통합’이 유일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방 예산이 감축되고 방위사업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1999년 대우중공업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등 3사를 통합해 출범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삼성과 한화그룹의 ‘방산 빅딜’이 대표적 벤치마킹 사례로 꼽힌다.

방위사업청 계약관리본부장을 지낸 송학 한국방위산업학회 부회장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방산 부문을 따로 떼내면 대규모 인력 등 인프라 확보를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각 조선사의 방산 부문을 분할해 합작법인을 설립하되, 정부가 적정 지분을 확보해 업체 간 ‘균형자’ 역할을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이달 초 발표할 국정과제에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위한 방산 분야 경쟁력 강화 방안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경민/김익환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