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가 다시 그리는 미술시장 흥행공식
‘물감이 마르기도 전에 산다.’

국내 미술 시장에선 요즘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게임 체인저’로 부른다. 주식·코인·부동산 투자 등으로 큰돈을 번 MZ세대가 미술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매시장의 룰’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어서다. 갤러리 지형도도 서울 삼청동에서 돈 많은 MZ세대의 주무대인 청담동과 한남동으로 재편되는 모양새다. 업계에선 ‘영파워 컬렉터’가 속속 뛰어들고 있는 만큼 지난해 9000억원 규모이던 국내 미술 거래시장이 올해 1조원 벽을 깰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MZ세대 컬렉터 누구

미술 시장 참여자는 코로나19를 관통하며 물갈이됐다. 수십 년간 화랑의 VIP들이 주도해온 이 시장에 2년 전부터 20~40대가 뛰어들어서다. 서울옥션의 정회원 신규 가입자 수는 2019년 2624명에서 지난해 1만738명으로 5배로 늘었다. 지난해 신규 가입자의 68%는 20~40대였다.

신규 컬렉터의 직업군도 달라졌다. 고액 자산가나 전문직에서 정보기술(IT)업계 종사자와 주식 투자자로 옮겨 갔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IT업계와 스타트업, 온라인 쇼핑몰 종사자가 지난해 신규 컬렉터의 절반을 차지했다. 변호사, 의사 등 전통 전문직(32.1%), 주식 투자 등 금융업(30.4%), 연예인(14.3%), 부동산 관련업(10.7%)이 뒤를 이었다.

MZ세대 컬렉터들은 작가와 그림의 정보 수집 경로도 다르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를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는 신규 컬렉터가 절반을 넘는다.

이들이 경매시장에 참여하면서 2년 전 10%를 밑돌던 온라인 응찰 비율은 20~30% 수준으로 올라섰다. 지난해 온라인 경매시장 거래액은 550억원으로 4년 만에 5.5배 성장했다.

아트 1번지 ‘강남 시대’ 열렸다

갤러리 지형도도 달라지고 있다. 인사동과 신사동, 평창동을 떠나 강남과 맞닿은 한남동과 청담동 등 ‘강남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다국적 갤러리가 지형 변화를 주도했다. 지난해 타데우스 로팍(잘츠부르크), 페이스 갤러리(뉴욕), 리만머핀(뉴욕)이 한남동에 진출했거나 강북에서 강남으로 확장 이전했다. 쾨닉서울(베를린), 글래드스톤(뉴욕)과 아시아 최대 화랑인 탕컨템퍼러리아트는 청담동에 둥지를 틀었다. 올해 독일 스푸루스마리스, 스위스 하우저&워스, 미국 투팜스 등도 서울행을 준비하고 있다. 부동산 컨설팅 회사 쿠시먼앤웨이크필드 리테일 임차자문팀 남신구 이사는 “청담동과 한남동은 명품 브랜드와 갤러리 등이 몰리며 3년 뒤 임대까지 꽉 차있다”고 말했다.

2008년 이후 10년 넘게 고전하던 아트페어도 작년을 기점으로 흑자 사업으로 돌아섰다. 올 9월에는 세계 양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Frieze)도 서울을 찾는다. 업계에서 올해 국내 미술 거래액 1조원 돌파를 점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블루칩 작가 내가 띄운다”

MZ 컬렉터들은 동시대 MZ 작가에 열광하는 게 특징이다. 기존 미술계가 화랑과 경매사 중심이었다면, MZ 컬렉터들은 아이돌 팬덤을 만드는 것처럼 작가를 점 찍고 이들과 소통하며 투자한다.

‘도도새 작가’로 유명한 1988년생 화가 김선우는 MZ 컬렉터들이 띄운 대표 작가다. 2019년 5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540만원에 팔렸던 그의 작품은 지난해 9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1억1500만원에 낙찰됐다. 2년여 만에 20배가 뛰었다. 도도새 연작은 ‘없어서 못 사는 그림’이 됐다. 우국원, 문형태, 하태임 등 국내 작가와 나라 요시모토 등도 그렇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아트바젤과 UBS에 따르면 고액 자산가 컬렉터 2600명 중 56%가 40대 이하, 크리스티의 지난해 신규 고객 31%가 밀레니얼 세대였다. 이런 점을 반영해 해외 갤러리들도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일각에선 거품을 우려하지만, 국내 미술시장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0.02%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아직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선진국 미술시장 규모는 GDP 대비 0.1~0.2% 수준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