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화된 입찰제안서·DCM 네트워크 승부수
33개 가상 시나리오로 철저한 대비
원활한 상장 위해 전산 시스템 선제적 투자
유가증권시장 역대 기관 경쟁률 1위인 2023.37 대 1을 기록했다. 기관 주문액은 1경5203조원에 달하면서 사상 최초로 ‘경’ 단위를 돌파했다. 청약 증거금도 역대 최대치인 114조1066억원을 달성했다.
‘LG에너지솔루션 효과’로 IPO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한국경제신문이 자본시장 실적을 집계한 결과 KB증권은 지난달 28일 기준 IPO 대표주관 점유율 49.1%로 업계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까지 카카오뱅크, 롯데렌탈, 현대중공업의 주식 공모를 성공적으로 마치는 등 기반을 착실하게 다진 효과다.
올해 들어서도 SK쉴더스, 원스토어, 현대오일뱅크, CJ올리브영 등 주요 IPO 주관계약을 따냈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빅딜 상장 및 주관계약 체결을 통해 IPO 내 메이저 플레이어로 도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황 1 취약한 주식발행시장(ECM) 경쟁력
도전 1 조직 개편 통한 전문성 강화
KB증권은 채권발행시장(DCM)의 전통적인 강자다. 하지만 장기 집권 중인 DCM뿐 아니라 ECM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KB증권의 새로운 과제로 꼽혔다. ECM 부문에서 톱티어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먹거리로 점찍은 게 IPO 시장이다. KB금융그룹 차원의 지원도 더해졌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꾸준히 ECM 실적도 1위를 주문하며 물심 양면으로 지원을 늘렸다. IB 전문가인 김성현 KB증권 대표이사도 IPO 경쟁력 확보를 위해 힘을 보탰다.
가장 먼저 손을 댄 부분은 ‘조직개편’이다. 지난해 5월 IPO 조직을 4개 부서로 늘리고 ‘ECM담당’을 설치했다. 국내 증권사 중 IPO 담당 조직을 4개 부서로 운영하는 곳은 KB증권이 최초다.
빅테크,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계), 이커머스, 빅데이터 등 TMT(Technology, Media, Telecom)기업의 IPO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ECM3부를 ECM3부와 ECM4부로 나눴다. 대신 이를 총괄 관리하는 ECM담당을 신설하는 등 대형 IPO에 대한 신규 영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와 함께 외부 인재를 지속적으로 수혈하며 ‘맨파워’를 키웠다. IPO 전문인력을 기존 35명에서 46명으로 늘렸다. IPO 실무 담당자뿐 아니라 애널리스트, 회계사, 사모펀드(PEF) 투자담당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은 전문가들이 합류했다.
KB증권 관계자는 “2017년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 합병 이후부터 꾸준하게 ECM부문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KB금융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이 결실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 2 “실무능력 부족하다” 시장 우려
도전 2 입찰제안서 포맷부터 바꿔
IPO업계에서는 KB증권의 IPO 주관 실무 능력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있던 게 사실이다. 특히 대형 IPO를 주관해본 경험이 적다는 목소리가 컸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KB증권은 입찰제안서 수령부터 제출 및 PT까지 전 과정을 대상으로 최소 3회 이상의 리뷰를 진행했다.
1차적으로 제안서를 작성한 담당 본부의 자체 리뷰를 시행한다. 이후 경영진 리뷰를 거쳐 최종 PT 리허설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철저한 피드백 과정이 동반된다. ‘IB통’으로 불리는 김 대표가 입찰제안서 검수, 직원 교육에 직접 나서는 등 전문성 강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차별화된 입찰제안서도 마련했다. 고객 입맛에 맞는 제안서를 작성하겠다는 취지다. 입찰제안서 포맷부터 확 바꿨다. 본부 차원에서 디자인을 통일하고 가독성이 높은 양식으로 입찰제안서를 통일했다. 리서치센터, 기업금융본부 등 다른 사업 부문과 협업도 강화했다.
KB증권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증권신고서만 700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꼼꼼한 검토 과정을 거쳤다”며 “발행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보다 설득력 있는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강점을 갖고 있는 DCM의 네트워크도 적극 활용했다. 대기업별로 영업담당(RM)을 통해 전략과 재무라인에 대한 네트워크를 공유했다. 대기업의 자금 조달 수요를 사전에 파악하는 데도 DCM 부문이 적극 협력했다.
상황 3 LG엔솔 청약 접속자 폭증 우려
도전 3 동시접속 가능 규모 6배 키워
초대형 IPO 상장의 연이은 성공에는 선제적인 전산 시스템 투자가 숨어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원활한 청약 및 상장을 위해 약 284억원의 전산 증설 비용을 투자했다. 먼저 하드웨어 측면에서 전산 시스템 처리 용량 증설에 약 240억원, 신규 고객용 인터넷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약 44억원을 투입했다.
기존 22만명의 동시접속자 대비 약 6배에 해당하는 최대 180만명(매매접속 150만 명‧시세조회 30만 명)의 동시접속이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인프라를 확충했다.
청약 기간에 나타날 수 있는 가상 시나리오를 미리 세워 대응책을 마련했다. 다른 청약 사례에서 나타난 장애 사례를 참조해 총 33개의 가상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KB증권 관계자는 “청약기간 내내 전 부서가 실시간 화상회의가 가능한 핫라인을 운영했다”며 “112개에 달하는 실시간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등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췄다”고 설명했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개선도 적극 나섰다. 주식투자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MZ세대의 접근성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고객행동지도를 작성해 MTS내에서 불필요한 고객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안내 팝업, 통합검색 개선, 화면 연계구조를 개선했다.
지난해 8월 출시한 모바일 간편 주식거래 플랫폼 ‘M-able 미니’를 통해 보다 쉬운 청약기능을 제공하는 등 고객의 편의성을 높이기도 했다.
KB증권의 다음 목표는 IPO 시장의 리딩 주관사로 입지를 다지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유망 비상장기업의 분석을 전담하는 ‘신성장기업솔루션팀’을 신설한 것도 이 때문이다. 모빌리티, 핀테크, 바이오, 그린 에너지 등 성장 산업의 우량 비상장기업에 대한 선제적인 리서치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KB증권 관계자는 “향후 다양한 분야의 IPO 주관사 자리를 따내려면 비상장기업 분석이 필수”라며 “IPO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기업은 뚜렷한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브랜드는 단지 우리 회사를 구분하는 이름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관계를 맺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마치 좋은 친구와 오랜 관계를 맺는 것처럼, 좋은 관계를 형성한 브랜드는 소비자와 오랜 기간 함께 할 수 있다.
그 출발은 우리 회사만의 확실한 “브랜드 스키마(Brand Schema)”를 형성하는 것이다. 브랜드 스키마란 “특정 브랜드에 대해 떠오르는 연상(association)들의 집합”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어떤 색깔이든, 특정 제품이든, 어떤 서비스이든 무엇이든 좋다. 소비자들이 우리 브랜드를 떠올리면 함께 생각나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아무런 연상도 떠오르지 않는 브랜드는 애초에 선택 후보에서 탈락될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산업일수록, 신생 브랜드일수록, 그리고 후발주자일수록 차별적인 브랜드 스키마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국내에는 이미 약 60개의 국내·외 증권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KB증권의 경우 DCM 시장의 강자로 인식되고는 있으나, 상대적으로 증권업에 늦게 진출하였고 특별히 리테일 고객들에게 많은 선택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KB금융그룹이라는 확실한 지원군을 등에 업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아쉬운 상황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KB증권이 이번에 “KB증권 = IPO시장의 리딩 주관사”라는 확실한 브랜드 스키마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LG에너지솔루션, 카카오뱅크, 현대중공업 등 굵직한 IPO를 주관하면서 특별히 주식 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MZ세대, 혹은 주식 초보자들에게 매우 강력하고 확실한 브랜드 스키마를 심어줄 수 있었다.
더군다나 금융서비스는 전환비용이 높아 첫 계좌를 개설한 금융회사를 계속 이용하는 경향이 높다. 따라서 KB증권이 IPO에 전력을 집중해 신규 리테일 고객까지 확보한 것은 매우 비용 효율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물론 향후 KB증권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IPO 리딩 주관사라는 스키마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KB증권은 KB금융그룹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여 더욱 긍정적인, 그리고 더욱 차별적인 브랜드 스키마를 추가로 형성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것처럼 마케팅에도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한 순서가 있다. 무작정 우리 브랜드를 선택해달라는 요구에 순진하게 넘어갈 고객은 없다. KB증권의 사례처럼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 확실한 브랜드 스키마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브랜드에 대한 선호(preference)까지 이끌어낼 수 있다면, 고객의 선택(choice)이라는 최종 도착지에 좀 더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마케팅은 결국 더 많은 소비자로부터 선택 받으려는 노력이다. 그래서 오랜 기간에 걸쳐,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여러 방법이 제안되었다.
모든 상황에 딱 들어맞는(one-size-fits-all) 방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많은 상황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그런 방법 중 하나가 ‘스토리’를 활용하는 것이다. 몇 년 전 우리말로 번역돼 소개된 ‘무기가 되는 스토리’라는 책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토리 활용 방법을 설명한다.
이 책이 주장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소비자는 자신이 주인공이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이드(브랜드)를 원한다. 하지만 브랜드가 스스로 잘났다고 떠벌리면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신에게 도움을 줄 가이드를 찾고 싶은 것이지, 자기 말고 다른 주인공을 찾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는 주인공(소비자)의 문제에 ‘공감’을 표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권위(능력)’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해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KB증권은 IPO 주관 업무를 맡기 위해 입찰제안서부터 고객 입맛에 맞게 바꿨다. 케이스스터디 기사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세 가지 노력을 했다.
입찰제안서 디자인을 개선했고, 사내 다른 부서와의 협업을 강화했으며, 입찰제안서 수령부터 제출 및 프레젠테이션(PT)까지 전 과정에 대해 3회 이상의 리뷰를 진행했다.
이런 세 가지 노력의 구체적인 내용이 기사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공감과 권위를 보여주려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먼저, 가독성이 높은 디자인을 통해 형식 측면에서 소비자에게 공감을 표시하고, 다른 부서와의 협업을 통해서는 고객의 자금 조달 수요 등에 공감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3회 이상의 리뷰를 통해 공감과 권위를 나타내는 내용을 입찰제안서에 담고, PT에서 그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연습했을 것이다.
브랜드와 마케터는 주인공(소비자)이 안고 있는 문제를 잘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가이드여야 한다.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을 때 소비자의 마음을 얻을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소비자가 상품을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시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리라. KB증권은 시장의 주인이 소비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 듯 하다. IPO주관을 통해 KB증권으로 유입될 소비자들이 경험할 수 있을 문제들을 선제적으로 해결해 주기 위해 기울였던 수많은 노력들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