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권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이 헌법상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무효화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면서다. 낙태권 폐지 움직임에 여론이 들끓으면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민주당에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전날 연방대법원이 있는 워싱턴DC를 비롯해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미국 전역에서 낙태권 옹호론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이들은 “강제된 모성은 여성을 노예화하는 것”이라며 낙태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다.

이번 시위의 도화선은 1973년 당시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대법원이 번복할 것이란 보도였다. 지난 2일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보수 성향의 새뮤얼 엘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다수 의견서 초안을 입수해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기로 했다”고 전했다. 낙태 합법화의 길을 열어준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임신 24주 이후에는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다고 보고 그 이전까지 낙태를 허용했다.

낙태권 폐지 가능성을 열어둔 이번 의견서는 지난 2월 말 대법원 내에서 공유됐다. 오는 6월 말로 예정된 최종 판결에서 초안대로 결정될 경우 49년간 이어진 미국 여성들의 낙태권은 더 이상 보장받지 못할 전망이다. 가디언은 “초안대로 결정된다면 공화당 출신 주지사가 있는 주를 포함해 총 26개 주에서 낙태를 금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대법관 9명 중 엘리토 대법관을 포함한 5명이 낙태 금지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낙태권은 11월 중간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로이터통신이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함께 조사해 이날 발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3%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낙태권을 옹호하는 후보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의견서에 반발하는 여성 등 지지층에 결집을 호소하며 판세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전략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번 논쟁에 직접 뛰어들었다. 삼권분립이 엄격한 미국에서 대법원의 판결 전 대통령이 개입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여성의 선택권은 필수적”이라며 “50년 가까이 이 땅의 법이던 로 대 웨이드는 기본적인 공정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뒤집혀선 안 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지만 여성의 낙태권을 지지하고 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