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다치는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법원에서 시설관리업체 측에 이전보다 무거운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판결이 늘고 있다. 과거에는 보호자 책임에 무게가 실렸다면, 최근엔 해당 장소의 ‘안전관리 의무’가 더욱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 것이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민사86단독 김상근 판사는 A군의 부모가 어린이 놀이시설 업체와 보험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최근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2019년 당시 6살인 A군은 부모와 함께 서울의 한 실내 놀이시설을 찾았다가, 그곳에 설치된 3~4m 높이의 인공암벽에서 점프하던 다른 아이에게 깔려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A군은 골절상을 입어 수술받았다. 재판부는 “인공암벽 시설에 낙상사고, 충돌사고 방지를 목적으로 한 아무런 안전장치가 비치돼 있지 않았다”며 업체 측 과실을 90%, 부모의 책임을 10%로 판단했다. 그리고 업체 측에 약 3500만원의 위자료를 A씨 부모에게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지난해에도 유치원생 B양이 대형마트 카트 보관소에서 부모와 함께 카트를 꺼내다가 철제 스탠드가 넘어지며 머리를 부딪치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재판부는 마트 측의 안전관리 소홀을 이유로 80%의 책임을 인정했다.

과거에는 어린이 안전사고 시 부모의 책임을 더 크게 물리는 사례가 많았다. 부모로서 자녀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동행하는 등의 책임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2002년 저수지에서 물놀이하다 숨진 4명의 부모가 농업기반공사(현 한국농어촌공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부모의 책임을 65%로 정한 판결을 하기도 했다.

2009년엔 놀이방(가정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한강 야외수영장을 찾았다가 C군(당시 3세)이 물에 빠져 중증 장애를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부모에게 “동행해 보호할 의무를 저버리고, (놀이방에) 잘 부탁한다는 의사만 밝혔다”는 이유로 30%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윤지상 법무법인 에스 변호사는 “부모가 시설과 어린이집 등에 비용을 지불하는 행위는 안전관리 등에 대한 책임을 맡기는 행위도 포함돼 있다”며 “시설업체의 안전관리 의무를 강조하는 판결이 나올수록 업체들이 안전에 신경 쓰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현아 기자 5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