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가 패소한 'MG손보 소송' 판결문 뜯어보니…'황당' [이호기의 금융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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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일 MG손해보험 대주주인 JC파트너스가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실금융기관 지정'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서 이례적으로 JC파트너스의 손을 들어주면서 금융위에게 굴욕을 안겼습니다. ▶관련기사
이미 보도된 대로 금융위의 적기시정조치(부실금융기관 지정)가 ‘대주주의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이유로 무력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JC파트너스는 금융위가 지난달 13일 정례회의를 통해 MG손보를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자 이에 불복해 밥원에 곧바로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결정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 소송을 냈지요.
금융위도 애초에 이번 소송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상대인 JC파트너스가 국내 행정소송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법무법인 세종을 선임한데다 MG손보의 부실이 일시적일 수 있다는 JC파트너스 측 주장이 최근 금리 급등으로 자본 건전성 위기에 빠진 다른 보험사들 입장에서도 공감이 가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보험사들은 올 들어 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지급여력(RBC) 비율이 급락해 자본 확충에 비상이 걸린 상태입니다. RBC는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충분한 여력을 갖추고 있는지 감독당국 입장에서 판단하는 지표입니다. 금리가 상승하면 보험사가 보유한 채권의 평가손실이 발생하면서 RBC비율이 하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이 시행되는 내년부터는 자산과 함께 부채도 시가로 평가되기 때문에 금리가 오르면 부채 역시 크게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JC파트너스도 소송 과정에서 “MG손보의 자본 잠식은 만기보유증권(채권)을 모두 매도가능증권으로 시가 평가해 얻어진 결과로 IFRS17이 시행되는 내년부터는 순자산이 플러스로 돌아선다”고 주장했지요.
이런 탓에 금융위는 법무법인 바른을 대리인으로 내세우고 금융감독원과도 공동 방어 전선을 구축하는 등 총력전을 폈습니다. 사안의 특성상 몇년이 걸릴지 모르는 본안 소송보다도 가처분 소송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법원 역시 지난달말 한차례 심문기일을 연 뒤에도 두 차례나 보완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 본안 소송에 못지 않게 상당히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고민의 결과물인 판결문은 과연 어땠을까요. MG손보의 부실금융기관 지정을 무효화한 판결문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서울행정법원 제12부 2022아11153 집행정지 사건의 판결문은 A4용지 5장 분량으로 신청인과 피신청인 등 단순 정보가 기재된 첫장을 제외하고 주문과 이유, 결론까지 모두 합쳐 단 4장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4장 가운데 절반 이상은 JC파트너스가 아닌 MG손보가 왜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는지 설명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법원은 MG손보가 JC파트너스와 함께 원고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데 대해 오승원 MG손보 대표가 이미 당국으로부터 업무집행정지를 당해 법적 행위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현행 행정소송법은 집행정지 인용을 위해선 원고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입증돼야 하고 (집행정지로)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MG손보의 부실금융기관 지정으로 원고인 JC파트너스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면 JC파트너스는 경영권을 잃고 보유 주식도 사실상 휴짓조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건은 공공복리에 미치는 영향이었습니다. 금융위도 이 부분을 소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현행 금융산업구조개선법에 명시된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내려진 적기시정조치가 이렇게 무력화된다면 향후 나타날 부실금융기관들도 적기에 이뤄져야 할 구조조정 작업이 크게 지연되면서 선량한 보험 계약자나 채권자의 피해가 덩달아 커질 수 있기 떄문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에 대해 "피신청인(금융위)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그 효력 정지가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단 한 문장으로 일축했습니다. 몇번을 들여다봐도 이 문장 외에는 다른 근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판결문만 보고서 왜 법원에 공공복리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며 "그 부분을 입증하려고 며칠 밤을 새워 자료를 만들고 법원에다 모두 제출했는데 솔직히 허탈한 마음"이라고 털어놨습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번 법원 판결이 이례적이긴 하지만 그리 놀랍지는 않다는 분위기입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단 8개월만 지나면 '장부의 대대적인 변신'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금리 상승과 회계 제도 변경이 가져온 마법 같은 일이지요.
그럼에도 MG손보의 부실이 하루이틀 일이 아닌 만큼 앞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없다면 근본적인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게 보험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법원이 비록 판결문에선 단 한 문장으로 요약했더라도 실제 의사 결정 과정에서는 저간의 사정까지 모두 꼼꼼하게 살펴본 뒤 나름의 판단 근거를 도출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이미 보도된 대로 금융위의 적기시정조치(부실금융기관 지정)가 ‘대주주의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이유로 무력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JC파트너스는 금융위가 지난달 13일 정례회의를 통해 MG손보를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자 이에 불복해 밥원에 곧바로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결정 취소를 청구하는 행정 소송을 냈지요.
금융위도 애초에 이번 소송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상대인 JC파트너스가 국내 행정소송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법무법인 세종을 선임한데다 MG손보의 부실이 일시적일 수 있다는 JC파트너스 측 주장이 최근 금리 급등으로 자본 건전성 위기에 빠진 다른 보험사들 입장에서도 공감이 가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보험사들은 올 들어 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지급여력(RBC) 비율이 급락해 자본 확충에 비상이 걸린 상태입니다. RBC는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충분한 여력을 갖추고 있는지 감독당국 입장에서 판단하는 지표입니다. 금리가 상승하면 보험사가 보유한 채권의 평가손실이 발생하면서 RBC비율이 하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이 시행되는 내년부터는 자산과 함께 부채도 시가로 평가되기 때문에 금리가 오르면 부채 역시 크게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JC파트너스도 소송 과정에서 “MG손보의 자본 잠식은 만기보유증권(채권)을 모두 매도가능증권으로 시가 평가해 얻어진 결과로 IFRS17이 시행되는 내년부터는 순자산이 플러스로 돌아선다”고 주장했지요.
이런 탓에 금융위는 법무법인 바른을 대리인으로 내세우고 금융감독원과도 공동 방어 전선을 구축하는 등 총력전을 폈습니다. 사안의 특성상 몇년이 걸릴지 모르는 본안 소송보다도 가처분 소송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법원 역시 지난달말 한차례 심문기일을 연 뒤에도 두 차례나 보완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등 본안 소송에 못지 않게 상당히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고민의 결과물인 판결문은 과연 어땠을까요. MG손보의 부실금융기관 지정을 무효화한 판결문은 아이러니하게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서울행정법원 제12부 2022아11153 집행정지 사건의 판결문은 A4용지 5장 분량으로 신청인과 피신청인 등 단순 정보가 기재된 첫장을 제외하고 주문과 이유, 결론까지 모두 합쳐 단 4장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4장 가운데 절반 이상은 JC파트너스가 아닌 MG손보가 왜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는지 설명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법원은 MG손보가 JC파트너스와 함께 원고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데 대해 오승원 MG손보 대표가 이미 당국으로부터 업무집행정지를 당해 법적 행위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현행 행정소송법은 집행정지 인용을 위해선 원고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입증돼야 하고 (집행정지로)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MG손보의 부실금융기관 지정으로 원고인 JC파트너스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면 JC파트너스는 경영권을 잃고 보유 주식도 사실상 휴짓조각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건은 공공복리에 미치는 영향이었습니다. 금융위도 이 부분을 소명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현행 금융산업구조개선법에 명시된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내려진 적기시정조치가 이렇게 무력화된다면 향후 나타날 부실금융기관들도 적기에 이뤄져야 할 구조조정 작업이 크게 지연되면서 선량한 보험 계약자나 채권자의 피해가 덩달아 커질 수 있기 떄문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에 대해 "피신청인(금융위)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그 효력 정지가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단 한 문장으로 일축했습니다. 몇번을 들여다봐도 이 문장 외에는 다른 근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판결문만 보고서 왜 법원에 공공복리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며 "그 부분을 입증하려고 며칠 밤을 새워 자료를 만들고 법원에다 모두 제출했는데 솔직히 허탈한 마음"이라고 털어놨습니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번 법원 판결이 이례적이긴 하지만 그리 놀랍지는 않다는 분위기입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단 8개월만 지나면 '장부의 대대적인 변신'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금리 상승과 회계 제도 변경이 가져온 마법 같은 일이지요.
그럼에도 MG손보의 부실이 하루이틀 일이 아닌 만큼 앞으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없다면 근본적인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게 보험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법원이 비록 판결문에선 단 한 문장으로 요약했더라도 실제 의사 결정 과정에서는 저간의 사정까지 모두 꼼꼼하게 살펴본 뒤 나름의 판단 근거를 도출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