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한 중소제조업체 공장 전경. 안대규 기자
수도권 한 중소제조업체 공장 전경. 안대규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00일이 됐지만 중소기업 3곳 중 1곳은 이 법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의 절반가량은 아직도 중대재해법 의무사항을 잘 모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중앙회는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제조업 504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 실태조사’에서 이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5일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 준수 여부에 대한 질문에서 중소기업의 35.1%는 “의무사항을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법을 준수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복수 응답)는 ‘안전보건 전문인력 부족’(55.4%)이었다. 이어 ‘준비기간 부족’(53.1%), ‘예산 부족’(40.7%), ‘의무 이해가 어려움’(23.7%) 등의 사유가 뒤를 이었다. 중대재해법 시행령에 따르면 50인 이상 기업은 무조건 산업안전 관련 전문 인력(안전관리자)을 갖춰야 하고 그럴 형편이 안 되면 외부 전문기관에 관련 업무를 위탁해야 한다. 안전관리자란 산업안전기사 건설안전기사 등 자격을 갖추거나 일정 교육 및 경력 기준을 갖춘 사람이다. 안전 관련 전문인력이 있다는 응답은 31.9%에 그쳤으며 다른 업무와 겸직하는 경우가 44.8%, 전문인력이 없는 경우도 23.2%에 달했다. 중소기업계가 중대재해법을 지키기엔 인력과 예산이 크게 부족한 현실을 드러낸 것이다.

중소기업 중 중대재해법 의무사항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50.6%에 그쳤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의무사항을 잘 모른다는 비중이 늘어나 50~99인 기업의 경우 절반 이상(60.4%)이 잘 모른다고 답했다.

현장 산업재해의 발생 원인에 대해 물어보니 ‘근로자 부주의 등 지침 미준수’가 80.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시설 및 설비 노후화’(10.3%), ‘현장 관리책임자의 관리소홀’(5.4%), ‘사업주의 의지·관심부족’(2.2%) 등 순이었다. 산재 예방을 위해 근로자에 책임을 부과할 필요성에 대해선 “필요하다”는 답변이 88.2%를 기록했다. 산재 예방에 대해 노사 공동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매출액이 120억원으로 상대적으로 작은 중소기업의 경우 필요하다는 응답이 95.3%에 달했다. 중대재해법은 근로자 부주의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고 산업안전보건법은 과태료 규정이 있지만 실제 부과규모는 미미한 수준이다. 반면 선진국의 경우 근로자도 부주의할 경우 형사처벌한다.

중소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사업주 의무내용 명확화’(60.8%), ‘면책규정 마련’(43.1%), ‘처벌수준 완화’(34.0%) 등의 입법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업주 의무내용 명확화와 관련해선 유해·위험요인에 대한 ‘필요한’ 조치 구체화(45.8%), 유해·위험요인 개선에 ‘필요한’ 예산 구체화(44.4%), ‘안전보건 관계법령’ 범위 제한(44.4%),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수급인의 범위 구체화(33.3%) 순으로 시행령 개정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실질적인 산재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안전설비 투자비용 등 지원 확대’(73.6%), ‘컨설팅·대응 매뉴얼 배포 등 현장 지도 강화’(42.7%), ‘전문인력 채용을 위한 인건비 지원’(42.3%) 등 정부 지원도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태희 중기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중대재해법은 처벌 수위는 높은 반면 의무내용이 포괄적이고 불명확해 중소기업이 체감하는 부담이 매우 크다”며 “실질적인 산재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의무내용 명확화 등 입법보완과 함께 안전설비 투자비용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