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수만번 내리친 금속, 달 품은 항아리 되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달항아리 공예가' 서도식 개인전…6월까지 갤러리밈
세번의 암으로 넘긴 '죽음의 고비'
근육 사라져 품에 껴안고 망치질
오월·시월 등 달 이름 붙인 작품
하루 4시간씩 한달간 두드려 탄생
'망치로 그린 그림' 부조도 선보여
세번의 암으로 넘긴 '죽음의 고비'
근육 사라져 품에 껴안고 망치질
오월·시월 등 달 이름 붙인 작품
하루 4시간씩 한달간 두드려 탄생
'망치로 그린 그림' 부조도 선보여
8년 전. 쉰여덟 살의 공예가 서도식(66)에게 식도암이 찾아왔다.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그에게 이것은 단지 불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2년 뒤 악성 림프종 진단을 받았고, 또다시 2년 뒤 암이 재발했다. 세 번에 걸친 죽음의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나니 평생 금속을 두드리며 얻은 근육이 녹아내린 듯 사라져 있었다. 의사는 “공예는 몸에 무리가 가니 이제 그만두라”고 했다.
그의 마음은 반대로 움직였다. ‘내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젠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뿐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작업실로 향했다. 망치를 집어들어 금속 판재를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제작 중인 작품을 모루쇠에 고정할 힘이 없어 품에 껴안고 두드린 적도 많았다.
수만 번의 망치질을 거치며 금속은 달항아리로 변했다. 항아리의 부드러운 곡선이 그를 껴안으며 “수고했다”고 말을 건네는 듯했다. 어느새 투병으로 망가진 몸과 마음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세 번째 투병할 때는 ‘이제 죽는구나’ 싶었어요. 뇌 림프종이 전두엽을 누르면서 구음장애가 와 말도 하지 못했죠. 퇴원할 때는 마치 긴 터널의 끝에서 빛이 비추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첫 투병 후에 첫 작품을 완성할 때 같은 감동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총 15점. 1~2층 전시장 중앙에 배치된 금속 달항아리 작품 여섯 점에는 ‘오월’ ‘시월’ 등 작가가 좋아하는 달(月)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가로 41㎝, 세로 47㎝의 풍만한 은(銀) 달항아리 ‘정월’이 달빛과 닮은 빛을 발하며 시선을 잡아끈다. 정월 대보름의 풍요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맑은 옻 수액을 얇게 발라 가마에서 구워낸 ‘삼월’ ‘십일월’ 등 작품에서는 은은한 광택이 편안함을 더한다.
금속 달항아리를 만드는 작업은 가로세로 60㎝, 두께 1.2㎝의 황동 혹은 은색 판을 작업대에 고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망치로 가장자리를 두드려 안쪽으로 판을 접어 나가면서, 강도와 두드리는 곳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항아리 모양을 만든다. 이 과정에 하루 네 시간씩 총 한 달이 걸린다.
수만 번에 이르는 망치질 덕에 작품은 푸근하면서도 매끈한 달항아리의 곡선을 품고 있다. 표면에는 겹겹이 새겨진 망치질 흔적이 단조 기법 특유의 매력을 자아낸다. 항아리의 형상을 담은 부조 작품 아홉 점도 눈길을 끈다. ‘deep light 8’은 달항아리 허리께에 구름이 걸려 있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한국적 멋과 함께 김환기 화백(1913~1974)의 대표작 중 하나인 ‘운월(雲月)’을 연상시킨다.
“붓 대신 망치로 그린 그림이라고나 할까요.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새겨 봤습니다. 그간 정교한 디테일에만 집중해왔는데, 작품을 완성하고 나니 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그의 한쪽 눈은 잘 보이지 않는다. 뒤편에 양성 종양이 남아 있어서다. 체력도 투병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전보다 기운이 넘친다”고 했다.
“학교에 30년 넘게 있었는데 강의와 겸직 등을 하느라 개인전을 겨우 여섯 번 열었어요. 코로나19 사태 이후 작업할 시간이 많이 생겼고, 지난 2월 정년퇴임을 한 뒤에는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전업 작가가 됐으니 그간 쌓인 내공을 모두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지난 2년간 이번 전시를 합쳐 총 세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6월 30일까지 계속된다. 갤러리밈은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국내외 중진 작가를 소개하는 ‘M’void 특별전’을 연다. 7월 6일부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젊은 작가 팀 뱅겔(31)의 전시가, 이후 한국 화가 이기영, 1세대 도예가 김익영 등의 전시가 예정돼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그의 마음은 반대로 움직였다. ‘내게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젠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생각뿐이었다.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자마자 작업실로 향했다. 망치를 집어들어 금속 판재를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제작 중인 작품을 모루쇠에 고정할 힘이 없어 품에 껴안고 두드린 적도 많았다.
수만 번의 망치질을 거치며 금속은 달항아리로 변했다. 항아리의 부드러운 곡선이 그를 껴안으며 “수고했다”고 말을 건네는 듯했다. 어느새 투병으로 망가진 몸과 마음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다.
망치로 새긴 ‘정월의 풍요’
서울 인사동 갤러리밈에서 열리고 있는 서 작가의 개인전 제목 ‘Find your light(당신의 빛을 찾아서)’에는 이런 경험이 담겨 있다.“세 번째 투병할 때는 ‘이제 죽는구나’ 싶었어요. 뇌 림프종이 전두엽을 누르면서 구음장애가 와 말도 하지 못했죠. 퇴원할 때는 마치 긴 터널의 끝에서 빛이 비추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첫 투병 후에 첫 작품을 완성할 때 같은 감동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총 15점. 1~2층 전시장 중앙에 배치된 금속 달항아리 작품 여섯 점에는 ‘오월’ ‘시월’ 등 작가가 좋아하는 달(月)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가로 41㎝, 세로 47㎝의 풍만한 은(銀) 달항아리 ‘정월’이 달빛과 닮은 빛을 발하며 시선을 잡아끈다. 정월 대보름의 풍요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맑은 옻 수액을 얇게 발라 가마에서 구워낸 ‘삼월’ ‘십일월’ 등 작품에서는 은은한 광택이 편안함을 더한다.
금속 달항아리를 만드는 작업은 가로세로 60㎝, 두께 1.2㎝의 황동 혹은 은색 판을 작업대에 고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망치로 가장자리를 두드려 안쪽으로 판을 접어 나가면서, 강도와 두드리는 곳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항아리 모양을 만든다. 이 과정에 하루 네 시간씩 총 한 달이 걸린다.
수만 번에 이르는 망치질 덕에 작품은 푸근하면서도 매끈한 달항아리의 곡선을 품고 있다. 표면에는 겹겹이 새겨진 망치질 흔적이 단조 기법 특유의 매력을 자아낸다. 항아리의 형상을 담은 부조 작품 아홉 점도 눈길을 끈다. ‘deep light 8’은 달항아리 허리께에 구름이 걸려 있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한국적 멋과 함께 김환기 화백(1913~1974)의 대표작 중 하나인 ‘운월(雲月)’을 연상시킨다.
“붓 대신 망치로 그린 그림이라고나 할까요.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새겨 봤습니다. 그간 정교한 디테일에만 집중해왔는데, 작품을 완성하고 나니 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죽을 고비 넘기니 내가 보이더라”
그는 한때 기술이 뛰어난 공예가로 이름을 날렸다. 금속판과 망치만으로 새 모양의 물부리를 한 주전자 등 복잡한 작품을 뚝딱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제는 기술이나 기법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나를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아직도 그의 한쪽 눈은 잘 보이지 않는다. 뒤편에 양성 종양이 남아 있어서다. 체력도 투병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전보다 기운이 넘친다”고 했다.
“학교에 30년 넘게 있었는데 강의와 겸직 등을 하느라 개인전을 겨우 여섯 번 열었어요. 코로나19 사태 이후 작업할 시간이 많이 생겼고, 지난 2월 정년퇴임을 한 뒤에는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전업 작가가 됐으니 그간 쌓인 내공을 모두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는 지난 2년간 이번 전시를 합쳐 총 세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는 6월 30일까지 계속된다. 갤러리밈은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국내외 중진 작가를 소개하는 ‘M’void 특별전’을 연다. 7월 6일부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젊은 작가 팀 뱅겔(31)의 전시가, 이후 한국 화가 이기영, 1세대 도예가 김익영 등의 전시가 예정돼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