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 교수로 살다 보면, 누군가 다가와서 건축에 관심을 보이며 “건축학(Architecture)은 공학(Engineering)이 아니라 예술(Art)의 한 분야더군요!”라고 말하는 분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들은 아마도 여태껏 건축을 거푸집에 철근을 세우고 콘크리트를 붓는 건설작업 정도로만 여겼나 보다. 사실, 건축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은 거의 비상식적인 질문에 가깝다. 당연히 건축은 예술의 중심이요, 예술품들의 집대성이며, 예술적 삶을 영위하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현대적 예술의 실험적 시도들이 빈번할 즈음, 독일에서는 바우하우스(Bauhaus)라는 신개념의 예술학교가 설립됐다. 그 후 10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학교에서 시도한 개혁적 교육이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개념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곳은 미술과 조각은 물론이고 일상의 디자인 제품과 주거 시설에 이르는 현대공예뿐 아니라, 급부상하던 사진과 영상 장르들을 다룰 만큼 당시로선 최첨단 교육기관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현대적 예술학교를 홍보하는 첫 카탈로그의 표지에 수백 년 전에 건축했을 법한 오랜 대성당 이미지가 버젓이 그려져 있었다. 교육 철학을 대변하는 심벌로 성당 이미지를 채택한 것은 종교적 의미라기보다는 하나의 건축물을 이루기 위해 예술 장르를 총체적으로 동원한 대성당의 시대처럼 건축이 예술의 중심적 지위를 회복하려는 의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건물들을 통해서 예술적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눈비를 피할 수만 있다면 나머지 모든 가치를 무시해도 수용하는 최소 주거공간 확보에 급급한 빈곤의 시대를 우리가 거쳐왔고, 한동안 건축의 삼대 요소인 유용성, 견고함, 아름다움 중에서 실용과 견고함만을 달성하는 데 집중한 탓이 크다. 물론 음악이나 미술과 문학은 그 자체가 실용성을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예술로서 가치를 얼마든지 갖는다. 하지만 아무리 고상한 미학적 가치를 지녔더라도 원래 유용한 목적을 충족하지 못하는 건축은 실패한 것이 돼 버린다. 그만큼 건축에서 실용성의 가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실용성을 빼놓고선 전혀 미학적이지도 않은 구조물들로 가득 찬 환경 속에서 살다 보니 건축을 예술로 느끼지 못하고 산다.

이제 스스로 경제 대국이라 뽐내고 K-한류의 문화를 자랑하고 있지만, 예술로서의 건축이 희귀한 시대, 건축이 예술임을 인식하기 어려운 도시를 살아간다면 우리 미래의 환경은 여전히 암울하다. 건축은 실용적인 건물을 구축하는 행위라기보다 풍요로운 인간 삶의 공간을 조성하는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