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한국 영화계 안방마님 강수연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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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 영화계 휘어잡은 '여장부'
강수연, 후배 영화인들 물심양면 지원
"韓 영화계 귀중한 자산, 칸·베네치아도 안타까울 것"
강수연, 후배 영화인들 물심양면 지원
"韓 영화계 귀중한 자산, 칸·베네치아도 안타까울 것"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류승완 감독의 천만영화 '베테랑' 속 명대사로 알려진 이 말은 향년 55세로 세상을 떠난 故(고) 강수연에게 저작권이 있다. 2017년 별세한 김지석 전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는 생전 이 말이 강수연에서 나왔음을 밝힌 바 있다.
이 말은 강수연의 평소 성격와 영화계에서의 입지를 잘 나타내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고인은 후배 영화인들을 물심양면 지원하며 술자리에선 이 같은 말을 하며 남성 중심의 영화계에서 중추적인 활약을 했다.
김지석 전 위원장의 저서 '영화의 바다 속으로'(2015)에선 강수연을 "부산영화제의 안방마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제 3회부터는 집행위원으로 참여했다.
책에 따르면 강수연은 외국의 거장 감독, 배우들이 내한했을 때 탁월한 사교성으로 저녁 자리에 참여했고 기업의 후원 조인식 등 성가실 만한 일에도 대배우로서 솔선수범해 참여했다.
'원조 월드 스타', '영화계 안방마님'의 작고에 영화계엔 슬픔만이 감돌고 있다. 지난 7일 별세한 강수연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영화계 인사들의 추모 발길이 계속되고 있다.
고인과 생전 돈독히 지냈던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현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과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함께한 임권택 감독, 고인의 유작이 된 넷플릭스 '정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원로배우 한지일 등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김 이사장과 임 감독은 "우리 장례식을 치러줄 사람이 먼저 갔다"며 슬픔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임 감독의 아내 채령 씨는 "(남편이) 너무 충격을 받아 말씀을 못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준익 감독, 배우 엄앵란, 안성기, 박기용 영화진흥위원장, 이동하 영화사 레드피터 대표 등이 조화를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강수연 전 집행위원장은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썼다"며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애도했다.
영화 '그 여자, 그 남자'(1993)를 연출한 김의석 감독은 연합뉴스에 "스케일이 큰 여성이었고 마음씨가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라며 고인을 떠올렸다.
그는 "겨울 촬영이 끝나면 스태프에게 장갑을 선물하고 식사비도 해 주셨다. 영화인이라는 직업을 떠나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이 든 사람"이라고 말했다.
영화 '블랙잭'(1996)을 함께한 정지영 감독도 "강수연 이전엔 누구에게고 '월드 스타'란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며 "칸과 베네치아에서도 안타까워할 거다. 한국 영화의 귀중한 자산이었는데 너무 일찍 가서 속상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배우 문성근은 "강수연 배우, 대단한 배우, 씩씩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했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명복을 빌었다.
김규리는 "나중에 저렇게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저희에게 등대 같은 분. 빛이 나는 곳으로 인도해주시던 선배님을 어떻게 보내드려야할 지 모르겠다"며 슬픔을 드러냈다.
감독 겸 배우 양익준, 작곡가 김형석, 가수 윤종신, 배우 봉태규 등이 일찍 영면에 든 고인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4살 때 아역 배우로 데뷔한 후 반세기 넘게 한국 영화와 함께 했다. 1983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스타덤에 올라 하이틴 스타로 거듭났으며 '고래사냥2'(1985),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 등의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며 대종상 첫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임권택 감독의 파격적인 소재의 영화 '씨받이'(1987)를 통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월드 스타'로 거듭났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한 한국 배우는 고인이 최초였다.
이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안의 블루'(1992) 등 작품을 연달아 흥행시키며 대한민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다. '대종상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등을 휩쓸었고 국내외 영화제 여우주연상만 10차례 받았다. 1990년대 중 후반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 페미니즘적 성격이 강한 작품 통해 한국의 여성상 변화를 표현해 호평받았다.
2001년엔 SBS '여인천하'의 정난정 역으로 화려하게 브라운관에 복귀했고 35%라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2007년엔 MBC '문희'를 선보였다. 2013년 독립영화 '주리' 이후 연기 활동을 줄이는 대신 문화행정가로 활동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초기부터 심사위원·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5년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2014년 이른바 '다이빙벨 사태' 이후 수년 동안 계속된 갈등과 파행의 책임을 지고 2017년 사퇴했다. 지난해 10월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게 4년 만의 공식 활동이었다.
강수연은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SF 영화 '정이' 촬영을 마치고 올해 공개를 앞둔 상황이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해당 작품은 촬영을 끝내고 후반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영화는 기후변화로 지구에서 더는 살기 힘들어진 인류가 만든 피난처 쉘터에서 내전이 일어난 22세기를 배경으로 연합군 측 최정예 리더 출신인 정이를 뇌 복제 실험 대상으로 삼아 연합군 승리의 열쇠가 될 인간형 전투로봇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강수연은 뇌 복제와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의 팀장 서현 역을 맡아 복제인간 역의 김현주와 호흡을 맞췄다. 이 작품은 고인의 9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라 큰 기대를 받았다.
한편 영화계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현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영화인장 장례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이우석·임권택·정진영 감독, 배우 김지미·박정자·박중훈·손숙·안성기 등이 고문을 맡았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층 17호에 차려졌다. 발인은 11일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류승완 감독의 천만영화 '베테랑' 속 명대사로 알려진 이 말은 향년 55세로 세상을 떠난 故(고) 강수연에게 저작권이 있다. 2017년 별세한 김지석 전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는 생전 이 말이 강수연에서 나왔음을 밝힌 바 있다.
이 말은 강수연의 평소 성격와 영화계에서의 입지를 잘 나타내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고인은 후배 영화인들을 물심양면 지원하며 술자리에선 이 같은 말을 하며 남성 중심의 영화계에서 중추적인 활약을 했다.
김지석 전 위원장의 저서 '영화의 바다 속으로'(2015)에선 강수연을 "부산영화제의 안방마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제 3회부터는 집행위원으로 참여했다.
책에 따르면 강수연은 외국의 거장 감독, 배우들이 내한했을 때 탁월한 사교성으로 저녁 자리에 참여했고 기업의 후원 조인식 등 성가실 만한 일에도 대배우로서 솔선수범해 참여했다.
'원조 월드 스타', '영화계 안방마님'의 작고에 영화계엔 슬픔만이 감돌고 있다. 지난 7일 별세한 강수연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영화계 인사들의 추모 발길이 계속되고 있다.
고인과 생전 돈독히 지냈던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현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과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함께한 임권택 감독, 고인의 유작이 된 넷플릭스 '정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원로배우 한지일 등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김 이사장과 임 감독은 "우리 장례식을 치러줄 사람이 먼저 갔다"며 슬픔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임 감독의 아내 채령 씨는 "(남편이) 너무 충격을 받아 말씀을 못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준익 감독, 배우 엄앵란, 안성기, 박기용 영화진흥위원장, 이동하 영화사 레드피터 대표 등이 조화를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강수연 전 집행위원장은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힘썼다"며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애도했다.
영화 '그 여자, 그 남자'(1993)를 연출한 김의석 감독은 연합뉴스에 "스케일이 큰 여성이었고 마음씨가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라며 고인을 떠올렸다.
그는 "겨울 촬영이 끝나면 스태프에게 장갑을 선물하고 식사비도 해 주셨다. 영화인이라는 직업을 떠나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이 든 사람"이라고 말했다.
영화 '블랙잭'(1996)을 함께한 정지영 감독도 "강수연 이전엔 누구에게고 '월드 스타'란 이름을 붙일 수 없었다"며 "칸과 베네치아에서도 안타까워할 거다. 한국 영화의 귀중한 자산이었는데 너무 일찍 가서 속상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배우 문성근은 "강수연 배우, 대단한 배우, 씩씩하게 일어나기를 기도했는데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명복을 빌었다.
김규리는 "나중에 저렇게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저희에게 등대 같은 분. 빛이 나는 곳으로 인도해주시던 선배님을 어떻게 보내드려야할 지 모르겠다"며 슬픔을 드러냈다.
감독 겸 배우 양익준, 작곡가 김형석, 가수 윤종신, 배우 봉태규 등이 일찍 영면에 든 고인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원조 월드 스타' 강수연, 너무 이른 영면
강수연은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뒤 사흘째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다가 7일 오후 3시경 별세했다.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4살 때 아역 배우로 데뷔한 후 반세기 넘게 한국 영화와 함께 했다. 1983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스타덤에 올라 하이틴 스타로 거듭났으며 '고래사냥2'(1985),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 등의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며 대종상 첫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임권택 감독의 파격적인 소재의 영화 '씨받이'(1987)를 통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월드 스타'로 거듭났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한 한국 배우는 고인이 최초였다.
이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안의 블루'(1992) 등 작품을 연달아 흥행시키며 대한민국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다. '대종상영화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등을 휩쓸었고 국내외 영화제 여우주연상만 10차례 받았다. 1990년대 중 후반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 페미니즘적 성격이 강한 작품 통해 한국의 여성상 변화를 표현해 호평받았다.
2001년엔 SBS '여인천하'의 정난정 역으로 화려하게 브라운관에 복귀했고 35%라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2007년엔 MBC '문희'를 선보였다. 2013년 독립영화 '주리' 이후 연기 활동을 줄이는 대신 문화행정가로 활동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 초기부터 심사위원·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5년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2014년 이른바 '다이빙벨 사태' 이후 수년 동안 계속된 갈등과 파행의 책임을 지고 2017년 사퇴했다. 지난해 10월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게 4년 만의 공식 활동이었다.
강수연은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SF 영화 '정이' 촬영을 마치고 올해 공개를 앞둔 상황이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해당 작품은 촬영을 끝내고 후반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영화는 기후변화로 지구에서 더는 살기 힘들어진 인류가 만든 피난처 쉘터에서 내전이 일어난 22세기를 배경으로 연합군 측 최정예 리더 출신인 정이를 뇌 복제 실험 대상으로 삼아 연합군 승리의 열쇠가 될 인간형 전투로봇을 만들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강수연은 뇌 복제와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의 팀장 서현 역을 맡아 복제인간 역의 김현주와 호흡을 맞췄다. 이 작품은 고인의 9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라 큰 기대를 받았다.
한편 영화계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현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영화인장 장례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이우석·임권택·정진영 감독, 배우 김지미·박정자·박중훈·손숙·안성기 등이 고문을 맡았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층 17호에 차려졌다. 발인은 11일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