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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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최근 2주간 상금을 가장 많이 챙긴 골퍼는 이가영(23·사진)이다. 우승을 해서가 아니다. 2주 연속 준우승했더니 어느새 ‘상금왕’ 자리까지 넘보게 됐다.

지난주 열린 KLPGA챔피언십에선 1억3200만원, 8일 열린 교촌허니레이디스오픈에선 8800만원을 챙겼다. 합치면 KLPGA챔피언십 우승자 김아림(2억1600만원)과 교촌오픈 우승자 조아연(1억5156만원)을 능가한다.

2019년 1부 투어로 올라온 이가영은 지금까지 준우승만 네 차례 했다. 준우승은 ‘우승으로 가는 징검다리’라고 하지만, 당사자의 속은 문드러진다. 교촌 대회에선 공동 선두로 출발해 경기 중반 4연속 버디를 쓸어담고도 조아연을 잡지 못했다.

일각에선 이가영을 두고 벌써부터 ‘준우승 징크스’를 얘기한다. 고진영과 임희정 등의 심리코치를 담당하는 정그린 그린코칭솔루션 대표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정 대표는 “이가영처럼 여러 차례 준우승한 선수는 사실상 우승할 실력을 갖췄다고 봐야 한다”며 “결정적인 순간에 종이 한 장 차이를 넘지 못했을 뿐 아직 징크스로 부르기엔 모호하다”고 했다.

실제 역사상 최고 골프선수로 불리는 선수 중에도 준우승을 우승보다 많이 한 사람이 있다. 남자 골프 메이저 최다승 기록 보유자인 잭 니클라우스는 메이저 18승을 거두기까지 19번의 준우승을 경험해야 했다. 19번의 메이저 준우승 역시 이 부문 최다 기록이다. 메이저 6승의 필 미컬슨이 준우승 11회로 뒤를 잇는다. 아널드 파머도 메이저 우승(7승)보다 준우승(10회) 횟수가 많다. 메이저 2승의 ‘백상어’ 그레그 노먼 역시 여덟 번의 메이저 준우승을 맛봤다.

골프의 전설들도 대회 마지막 날 겪게 되는 심리적 압박감을 이겨낸 것보다 진 적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물론 우승자는 단 한 명뿐인 반면 준우승자는 2~3명이 될 수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예외도 있다. ‘멘탈이 강한’ 타이거 우즈는 15승을 거두면서 준우승은 일곱 번만 했다.

KLPGA투어에서 최다 준우승 기록을 보유한 이는 정일미 호서대 교수다. 그는 8승을 수확하는 동안 21번의 준우승을 경험했다. 2위는 15승을 거두는 동안 19번 준우승한 장하나. 투어 통산 7승을 거둔 고(故) 한명현도 18번의 준우승을 경험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뛰는 전인지도 ‘준우승 늪’에 빠진 적이 있다. 2016년 9월 메이저대회 에비앙챔피언십에서 통산 2승을 거둔 뒤 무려 여섯 번의 준우승을 경험했다. 2018년 10월 하나은행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까지 2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KLPGA 이소미(21)도 준우승만 네 번 했다가 ‘준우승 전문가’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러다 2020년 휴앤케어 여자오픈을 시작으로 2년 동안 3승을 수확했다.

아슬아슬한 승부에서 이기고 우승컵을 들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 박광진 PKJ심리연구소 소장은 “톱 랭커들의 실력은 엇비슷한 만큼 우승을 가르는 요인의 90%는 멘탈”이라며 “승부처에서 멘탈을 부여잡고 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 소장은 니클라우스를 예로 들었다. 그는 “과거 니클라우스는 시합 전 인터뷰에서 ‘이전 시합의 실수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실수한 기억이 없다’고 답했다. 위대한 선수일수록 선별적 기억상실을 잘한다. 이전 실수를 망각하고 그 자리에 과거 성공 경험을 대신 채운다면 부정적인 기억이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