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초대 대통령실 민관합동위원장에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사진)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1위 반도체 기업을 키워낸 기업 경영 노하우를 국정 운영에 활용해 대한민국의 혁신과 성장의 엔진을 다시 가동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사가 반영됐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9일 “권오현 전 회장이 대통령실에 신설될 민관합동위원회 위원장으로 낙점됐다”며 “새 정부가 출범하면 권 회장과 민관합동위 인선과 조직 구성 등에 대해 협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관합동위는 정부와 민간 출신 인재가 절반씩 참여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다. 윤 대통령은 민관합동위를 통해 경직된 관료사회에 창의와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윤 대통령 측은 일찌감치 재계 1위 그룹인 삼성그룹의 전·현직 최고경영자(CEO) 출신을 중심으로 인사 추천을 받은 결과 권 전 회장을 낙점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 전 회장은 삼성전자를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으로 키워내는 데 기여한 신화적 인물이다. 윤 대통령이 2017년 3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직후 세대교체를 위해 미련없이 CEO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권 전 회장의 리더십을 듣고, 당선인 시절 직접 영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 회장의 저서인 ‘초격차’에 감명한 안철수 전 대통령직인수위원장도 권 전 회장을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을 초대 민간합동위원장으로 낙점한 배경에는 켜켜이 쌓인 관료주의의 폐해를 개혁하려면 파격적인 인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윤 대통령은 기업인을 정부 부처 장·차관으로 기용하겠다는 복안도 있었지만, 이들 기업인이 재산 백지신탁, 인사청문회 등을 이유로 거절하자 민관합동위를 강화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세계 최대 검색기업 구글의 에릭 슈밋 전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대통령 직속 인공지능국가안보위원장, 국방부 혁신자문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정부 조직과 민간기업 간 시너지를 낸 사례를 들여다본 후 민관합동위를 대선 공약으로 제안했다. 윤 대통령이 삼성그룹 전직 CEO 출신을 민관합동위원장 후보군으로 물색한 것도 글로벌 기준을 잘 아는 기업인을 기용해 혁신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판단에서다.

새 정부와 삼성그룹의 가교 역할은 삼성 법률 고문인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도 대통령실 직속이 아니라 정부에 설치될 또 다른 민관합동위원장 후보군으로 인사 검증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간 기업의 노하우를 국정에 활용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는 이미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당선인 측은 대통령실 홍보수석에도 삼성그룹의 사장급 현직 임원을 기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다. 지나치게 삼성과 정부가 가까워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언론인 출신인 최영범 효성그룹 커뮤니케이션실장(부사장)을 홍보수석에 임명했다.

윤 대통령은 민관합동위가 개혁에 소극적인 관료사회를 자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참모들에게 “민간합동위가 공무원의 들러리 조직이 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의사 권한을 부여하라”고 지시한 배경이다. 위원회 조직은 관료와 민간 인재를 절반씩으로 구성해 출범할 예정이다. 해외 동포 출신 전문가를 파격 기용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은 민관합동위원장으로부터 주요 사안을 보고받고 주요 과제는 해당 부처 장·차관들과 토론하게 해 결론을 내겠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민관합동위가 경제수석, 정책조정기획관 등 정부의 정책을 조정·조율하는 부서들과 업무가 중복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대통령실 내부에선 신설될 정책조정기획관의 역할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좌동욱/양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