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확률도 책임지기 싫다"…세계 유일 '핸드드라이어 금지국' 日
도쿄 시나가와구 운하변에 있는 수제맥주 전문 레스토랑 T.Y.하버. 이곳은 영국의 부촌 리치먼드를 연상시키는 분위기 덕분에 언제나 외국인 손님이 몰린다. 이 식당 화장실에는 핸드드라이어(사진)가 설치돼 있지만 ‘사용 중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T.Y.하버 매니저는 “도쿄도의 지침”이라고 설명했다.

T.Y.하버뿐 아니라 2020년 5월 이후 도심 오피스빌딩, 대형 쇼핑몰 등에서 대부분 화장실에 설치된 핸드드라이어 사용을 금지했다. 일본 공용시설 화장실에 설치된 핸드드라이어는 100만 대 이상으로 추산된다. 일본의 화장실에서 2년째 핸드드라이어를 쓸 수 없는 것은 일본 최대 경제단체 게이단렌의 제안이 발단이 됐다.

게이단렌은 2020년 5월 채택한 ‘코로나19 방지대책 가이드라인’에 핸드드라이어 사용 중지를 포함시켰다. 핸드드라이어의 바람을 통해 비말이 확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 정부가 게이단렌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일본 전역의 핸드드라이어가 일제히 멈추게 됐다.

하지만 홋카이도대의 연구 결과 이용자가 일반적인 방법으로 핸드드라이어를 사용했을 때 감염 확률은 0.01%로 나타났다. 주요 28개국 가운데 핸드드라이어 사용을 금지한 국가 역시 한 곳도 없었다.

2021년 4월 13일 게이단렌은 40페이지짜리 자료를 내고 핸드드라이어 사용을 금한 가이드라인을 개정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 정부가 게이단렌의 ‘사용 중지 철회’에 응하지 않았다. 핸드드라이어를 통한 감염 사례가 단 한 건이라도 나오면 책임을 추궁당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많은 전문가는 일본의 진취적인 기상이 사라지고 만성적인 침체가 온 원인으로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은 ‘책임 안 지려는 문화’를 꼽는다. 정치 지도자는 물론 관공서 공무원부터 동네 편의점 직원까지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아니라고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는 식의 책임 회피 어법이 만연한 것이 사례로 거론된다.

게이단렌이 핸드드라이어 사용 재개를 발표한 작년 4월은 코로나19 장기화로 항공·운수와 외식업 등 기간산업이 고사 위기에 빠졌을 때였다. 그런데도 게이단렌이 회원 기업들의 존속이 걸린 문제보다 핸드드라이어 문제에 주목한 이유 또한 책임 소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는 시각이 많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핸드드라이어 사용 중단 권고를 방치하면 앞으로의 정책 제안과 조직의 신뢰성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