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하루 앞둔 9일 직원들이 새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될 서울 용산구 옛 국방부 청사를 바라보고 있다.  김범준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하루 앞둔 9일 직원들이 새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될 서울 용산구 옛 국방부 청사를 바라보고 있다. 김범준 기자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를 보면 노동시장 유연화, 연금개혁 등을 회피한 것 같습니다. 이대로라면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가 어렵습니다.”(김진영 한국노동경제학회장)

주요 민관 경제연구원장과 학회장들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 초부터 노동·교육·연금·공공개혁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4대 개혁의 시기를 늦추면 향후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또 기득권의 저항을 뚫고 개혁을 추진하려면 정권 초부터 뚝심 있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금 개혁 더 늦으면 안 돼”

연구원장·학회장들은 한목소리로 윤석열 정부가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고 진단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고부채·저성장 등 ‘4고1저’ 상황을 극복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다. 전영준 한국재정학회장은 “문재인 정부 초기와 비교해도 새 정부가 처한 출범 직전 상황은 매우 나쁘다”며 “대외환경 탓에 글로벌 공급망이 상당 부분 붕괴됐고,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온다”고 설명했다. 김영민 LG경영연구원장은 “통상 환경 등 우리가 익숙한 원칙과 질서가 최근 다 바뀌고 있다”며 “새 정부는 새로운 경제질서 상황에 적응하면서 미래 먹거리를 찾는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연금·노동개혁 집권 초부터 고삐 죄고, 기업과 동반자관계 돼라"
하지만 당장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만 집중하면 안 된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김 원장은 “당장의 복합 위기는 유연한 정책으로 대처하고 중장기적 혁신 기반을 마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국민연금 및 건강보험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전 회장은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지금 제도를 그대로 두면 연금 고갈 등 감당하기 힘든 상황으로 번질 것”이라며 “새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영 회장도 “국민연금 개혁은 보험료를 소폭 높이고 수혜액을 일부 감소하는 방식으로 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밖에 안 된다”며 “향후 출산율 등을 감안해 대대적인 개혁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저출산·고령화 대응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한국은 2100년이면 나라가 없어질 정도로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이라며 “인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중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는 큰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 정원 조정 등 교육 개혁도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재정 건전화에 대한 주문도 나왔다. 전 회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있는 만큼 관련 예산들은 점차 삭감해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 때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고 추진되는 가덕도신공항 등 사업들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유연화 등 노동개혁 나서야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달라는 조언도 이어졌다. 지난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비롯한 분배 위주 정책과 반기업 정서 등으로 위축된 민간 영역의 기를 살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경제법령상 최고경영자(CEO)를 처벌하는 조항 수가 2200여 개에 달하는데 이런 법령만 정비해도 기업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며 “불필요한 규제 개선 및 기업 세 부담 완화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현 산업연구원장은 “경제의 역동성을 위해 기업들이 마음껏 혁신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상만 한국경영학회장도 “새 정부는 기업과 동반자적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회장은 또 “과거 고도성장기에 구축된 법과 제도가 지금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불필요한 규제를 다 없애는 것도 새 정부의 역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노동계에 기울어진 노동 관련 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김 회장은 “주 52시간제(근로시간 단축) 단위 기준을 1주일이 아니라 1개월로 하거나 특례업종을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유연하게 운영하는 것을 우선 과제 중 하나로 추진해야 한다”며 “성과가 나지 않는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제안했다.

도병욱/임도원/정의진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