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방정부의 인프라 투자용 회사인 지방정부융자회사(LGFV)가 부동산개발업체들을 대신해 달러채권을 가장 많이 발행하는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9일 보도했다.

무디스에 따르면 중국의 LGFV는 지난해 중국 전체 기업들이 발행한 달러채권의 4분의 1가량인 280억달러 규모의 달러채권을 발행했다. 홍콩 신용정보업체 펑위안은 LGFV가 올해 4월까지 발행한 달러채권 액수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184% 늘었다고 집계했다. 펑위안은 중국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인프라 투자를 독려하고 있어 올해 LGFV의 달러채권 발행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SCMP는 4월 마지막 주에만 5곳 이상의 LGFV가 달러채권을 발행한 것으로 집계했다. 장쑤성 화이안시의 화이안개발이 3년 만기 2억달러 채권을, 청두공항신청투자가 3년 만기 5억달러 채권을 각각 발행했다. 저장성의 란시교통건설투자그룹, 충징의 난안도시건설개발그룹도 달러채권을 발행했다. 각 지방의 은행들이 보증을 섰다. 금리는 연 4.5~5.5% 수준으로 3~4%인 중국 투자등급 회사채보다 높은 편이다.

LGFV는 지방정부의 부동산 등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인프라 사업에 투자하는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다. 지방정부가 보유한 국유기업이지만 LGFV의 채무는 지방정부 계정으로 잡히지 않는다.

LGFV들이 어떤 조건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빌리는지에 대한 공식 통계도 없다. 이 때문에 LGFV의 채무는 중국의 대표적 '숨겨진 채무'이자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중국은행(4대 국유은행 중 한 곳)이 2020년 6월 내놓은 보고서에서 2019년 말 기준 49조3000억위안(약 8607조원)으로 추산한 것이 가장 최근 자료다. 2019년 지방정부 공식 채무 21조5000억위안의 2.3배, GDP(99조위안)의 49%에 달하는 규모다.

중국 정부는 LGFV 채무를 양성화하기 위해 2015년부터 지방정부전용채권 제도를 도입하는 등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장순청 피치 애널리스트는 "일부 LGFV가 역내채권 발행 규제를 피하기 위해 역외 달러채권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인프라 투자를 독려하면서 LGFV의 채권 발행도 늘어나고 있지만, 이것이 다시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헝다 등 대형 부동산개발업체들이 잇달아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면서 중국 부동산업체들의 달러채권 발행이 급감한 가운데 LGFV가 그 빈 자리를 메꾸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5일까지 중국 기업들이 발행한 달러채권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5.3% 급감했다. 부동산개발업체들은 단 10건, 전체 금액의 4.3%에 그쳤다. 작년 44건, 20%에서 크게 줄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