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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앱 하나로 은행계좌를 1분 만에 만드는 시대. 그러나 실손 보험금 청구는 여전히 까다롭다. 진료를 받은 뒤 병원에 일일이 찾아가 수수료까지 내면서 진단서를 떼야 한다. 이후에는 이 서류를 스캔하거나 카메라로 찍어 앱이나 이메일을 통해 보험사에 보내야 한다. 이마저도 병원 영업 시간이 아닐 때는 서류도 발급 받지 못 받는다. 보험 청구를 위해 서류는 오직 종이로 받아야 한다. 이 같은 불편함은 언제 해소될까.

지난 9일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일부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보험가입자 대신 보험금 청구를 해주는 것이 골자다.

지금은 보험가입자가 실손 보험금을 청구하려면 의료비를 먼저 낸 뒤 진단서 등을 종이 서류 형태로 발급 받아야 한다. 관련 서류는 이메일 등을 통해 직접 보험사에 보내야 한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내가 낸 보험금으로 보험금을 받는데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불만이 들끓었다.

금융소비자연맹이 지난해 4월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7.2%가 실손보험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30만원 이하 소액청구 건은 무려 95.2%를 기록했다. 보험금 청구 절차가 불편하다 보니 청구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개정안은 보험금 청구 업무를 심평원에 위탁하도록 했다. 보험가입자 대신 병원이 심평원에 보험금 청구와 지급에 필요한 서류를 보내면, 심평원이 이를 보험사에 보내는 방식이다.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제출 서류를 비전자문서 형태로 규정하고, 해당 업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되는 정보는 누설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도 담겼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13년 넘게 이어진 과제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의 권고 이후 입법이 계속 표류 중이다. 20대 국회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입법이 추진됐으나 무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고용진·김병욱·전재수·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등이 관련 법안을 내놨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동안 의료계 반대가 컸다. 실손보험 청구를 전산화하면 환자의 의료기록이 유출되거나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다만 그 속내에는 ‘병원이 자체적으로 정하는 비급여 항목을 심평원이 통제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보험업계는 보험금 지급이 빨라지는 만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과잉 진료에 따른 보험금 누수도 어느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험업계는 보고 있다.

국회에 이어 정부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2일 디지털플랫폼정부 추진 과제에 실손보험 간편청구를 포함했다. 인수위가 지난달 11~14일 국민소통 플랫폼 '국민생각함'을 통해 14개 생활밀착형 과제의 우선 시행순위를 물은 결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응답자 4323명 중 2003명의 선택을 받아 1위로 꼽혔다.

배 의원은 "국민 편의를 높이면서 의료정보를 지키고 과도한 정보가 민간 보험회사로 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청구 간소화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