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말, 국내 1위 선풍기 업체 신일전자로 낡은 선풍기 한 대와 이런 내용을 담은 손편지가 함께 배달됐습니다. 전라남도 광주에 사는 조모 씨가 보낸 것인데, 조씨를 포함한 3대(代)가 사용한 제품입니다. 그가 직접 손으로 쓴 편지와 선풍기를 신일전자로 보낸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씨가 사는 마을에는 1979년 처음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그 해 여름 그의 부친은 5일장에서 돌아오며 선풍기를 사들고 왔습니다. 그들 가족에게 신일전자 선풍기가 가전제품 1호가 된 때입니다. 조씨는 "저와 동생들은 회전 방향으로 고개를 따라 돌리며 신기해하던 추억이 떠오릅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만난 선풍기는 조씨가 새 가정을 꾸려 자식을 키울 때까지 계속 함께 했습니다. 덕분에 조씨의 생애 첫 가전제품은 부모님 세대부터 자식 세대에 이르기까지 3대를 같이 하며 가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사용한 지 40년을 훌쩍 넘으면서 부품을 더 이상 구하기 어려워지고 수리도 힘들어지게 된 겁니다. "승압기마저 고장나고 110V 콘센트마저 깨져 부품을 구해보고자 수소문해봤지만 구할 수가 없습니다."
조씨는 이 선풍기를 버리는 대신 제조사인 신일전자에 기증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혹여 장인정신 교육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3대가 사용할 수 있는 장인정신의 혼이 깃든 제품을 생산하는 신일산업이 되리라 믿사옵니다"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좋은 추억을 갖게 한 친구, 3대를 지켜준 친구를 만들어 준 신일산업 사장님, 임직원님께 진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신일전자는 조씨 같은 소비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레트로 선풍기' 출시로 화답했습니다. 12일 1980년대 감성을 담은 '탁상용 레트로 선풍기'를 선보였습니다. 본체 정중앙에는 1980년도 사용하던 로고를 사용하고 아날로그 스타일의 파란 날개와 직관적인 조작부도 그대로 살렸습니다. 고성능 모터(BLDC)를 탑재해 저전력·저소음을 실현한 게 실제 1980년대 제품과 다른점입니다. 디자인은 복고이지만 성능은 최신인 셈입니다.
신일전자 관계자는 "레트로 선풍기는 수십 년 애착을 갖고 사용해 온 선풍기를 계속 쓰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요청에 부응해 탄생했다"며 "소비자들의 목소리에 꾸준히 귀를 기울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회사는 조씨가 보낸 선풍기와 손편지를 충남 천안 공장 쇼룸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신일전자는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국내 1위 선풍기 회사로 지난해 연간 전년 대비 10% 증가한 170만 대의 선풍기를 판매했습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