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타잔처럼 '낡은 줄기' 버린 스포티파이, 33조원 음악시장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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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잔 경제학
윌 페이지 지음 / 이수경 옮김
한국경제신문 / 400쪽│1만9000원
'대중음악 경제학' 개척한 윌 페이지
기존 업계·가수 CD 판매만 고집
불법 음원 공유 사이트에 무너져
'월 9.99달러' 스트리밍이 시장 접수
"낡은 줄기 버리고 새 줄기 잡아야"
음악 뿐 아닌 모든 산업에도 통용
윌 페이지 지음 / 이수경 옮김
한국경제신문 / 400쪽│1만9000원
'대중음악 경제학' 개척한 윌 페이지
기존 업계·가수 CD 판매만 고집
불법 음원 공유 사이트에 무너져
'월 9.99달러' 스트리밍이 시장 접수
"낡은 줄기 버리고 새 줄기 잡아야"
음악 뿐 아닌 모든 산업에도 통용
글로벌 음악 시장 매출 그래프엔 깊은 계곡이 있다. 1999년(241억달러)과 2021년(259억달러)을 봉우리로, 그 사이에 2014년(142억달러)을 바닥으로 한 U자형 계곡이다. 그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잘나가던 시장이 ‘냅스터’란 음원 불법 공유 사이트 탓에 무너졌다가 스포티파이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되살아난 게 그래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월 9.99달러에 무제한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한다’는 간단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행하는 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타잔 경제학》은 “기존 음악업계가 낡은 줄기를 놓고 새 줄기를 붙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정글 속 타잔처럼 두려운 마음을 다잡고 적절한 시기에 새 줄기로 갈아타야 한다”는 게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저자 윌 페이지는 음악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2012년 스포티파이에 합류해 2019년까지 수석경제학자를 지냈고, 로코노믹스(Rockonomics·대중음악 경제학)라는 분야를 개척했다. 책은 경제학자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음악산업의 디지털 전환 뒤에 숨겨진 경제학적 작동 방식을 파헤친다.
음악업계는 한 사람당 1년에 120달러만 내면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한다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2004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1억6200만 명이 CD를 구입했다. 1인당 평균 연간 61달러를 CD 구입에 썼다. 이러니 기존 CD 구입자를 지키는 게 중요해 보였다. 가수들도 스트리밍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스트리밍 1회당 저작권료가 0.005달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판이었다. 미국 CD 구입자는 2019년 4800만 명으로 줄었다. 1인당 구입액은 29달러로 하락했다. 반면 미국의 음악 스트리밍 구독자는 2011년 450만 명에서 2019년 9340만 명으로 늘어났다. 1인당 연평균 지출액은 81달러로 올라섰다.
저자는 업계와 가수들의 계산이 처음부터 틀렸다고 설명한다. BBC2 라디오에서 가장 인기인 ‘브렉퍼스트 쇼’는 노래를 틀 때마다 150파운드의 저작권료를 지급한다. 청취자 800만 명으로 나누면 1인당 0.00002파운드다. 스트리밍의 100분의 1에도 안 되는 금액이다. CD도 얼마를 듣든, 중고를 팔든 추가로 저작권 수입을 얻을 수 없다는 점에서 스트리밍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스트리밍은 듣기에도 간편하다. CD를 사서 플레이어에 넣을 필요도, MP3 파일을 내려받기까지 몇 초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불법 P2P 사이트가 기승을 부린 것은 돈도 돈이지만, CD를 사서 듣는 것보다 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P2P보다 음악을 더 쉽게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이 나오자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스트리밍 사이트는 보통 6000만 곡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매출의 90%는 보유 곡의 1%에서 나온다. 과거 최대 음반 매장인 타워레코드가 보유한 4만 장의 앨범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정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나머지 99%의 곡을 없앤다면 장사를 접어야 할지 모른다.
책은 식당 메뉴를 비유로 든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인기 없다는 이유로 없애면, 채식주의자를 친구로 둔 사람은 이 식당을 처음부터 배제하게 된다. 가끔 새로운 요리를 맛보고 싶은 손님들의 발길도 뜸해질 것이다. 우리가 대형마트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대형마트에 있는 모든 물건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찾는 물건이 대형마트에는 반드시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에 가지 않는가.
음악산업의 뒷얘기는 책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유튜브 창작자가 시청자와 직접 소통하고 후원 모델로 돈을 버는 방식의 원조가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란 사실을 아는가. 라디오헤드는 2007년 10월 새 앨범 ‘인 레인보우즈’를 인터넷에 무료 공개하며, 내고 싶은 만큼 돈을 내라고 했다. 중간 퍼블리셔의 힘이 약해지고 창작자와 이들이 활동하는 플랫폼의 힘이 강해진 현재의 모습을 예고한 사건이었다.
음악산업을 다뤘지만,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 책에 더 열광한다. 그만큼 대중음악과 비슷한 처지에 놓은 산업이 많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먼저 겪고, 먼저 회복한 음악산업이 걸어온 길을 뒤따를 산업들이 도처에 존재한다. 그렇게 타잔 경제학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힘을 발휘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월 9.99달러에 무제한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한다’는 간단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실행하는 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타잔 경제학》은 “기존 음악업계가 낡은 줄기를 놓고 새 줄기를 붙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정글 속 타잔처럼 두려운 마음을 다잡고 적절한 시기에 새 줄기로 갈아타야 한다”는 게 이 책의 핵심 메시지다.
저자 윌 페이지는 음악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 중 한 명이다. 2012년 스포티파이에 합류해 2019년까지 수석경제학자를 지냈고, 로코노믹스(Rockonomics·대중음악 경제학)라는 분야를 개척했다. 책은 경제학자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음악산업의 디지털 전환 뒤에 숨겨진 경제학적 작동 방식을 파헤친다.
음악업계는 한 사람당 1년에 120달러만 내면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한다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2004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1억6200만 명이 CD를 구입했다. 1인당 평균 연간 61달러를 CD 구입에 썼다. 이러니 기존 CD 구입자를 지키는 게 중요해 보였다. 가수들도 스트리밍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스트리밍 1회당 저작권료가 0.005달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판이었다. 미국 CD 구입자는 2019년 4800만 명으로 줄었다. 1인당 구입액은 29달러로 하락했다. 반면 미국의 음악 스트리밍 구독자는 2011년 450만 명에서 2019년 9340만 명으로 늘어났다. 1인당 연평균 지출액은 81달러로 올라섰다.
저자는 업계와 가수들의 계산이 처음부터 틀렸다고 설명한다. BBC2 라디오에서 가장 인기인 ‘브렉퍼스트 쇼’는 노래를 틀 때마다 150파운드의 저작권료를 지급한다. 청취자 800만 명으로 나누면 1인당 0.00002파운드다. 스트리밍의 100분의 1에도 안 되는 금액이다. CD도 얼마를 듣든, 중고를 팔든 추가로 저작권 수입을 얻을 수 없다는 점에서 스트리밍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스트리밍은 듣기에도 간편하다. CD를 사서 플레이어에 넣을 필요도, MP3 파일을 내려받기까지 몇 초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불법 P2P 사이트가 기승을 부린 것은 돈도 돈이지만, CD를 사서 듣는 것보다 편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P2P보다 음악을 더 쉽게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이 나오자 기꺼이 돈을 지불했다.
스트리밍 사이트는 보통 6000만 곡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매출의 90%는 보유 곡의 1%에서 나온다. 과거 최대 음반 매장인 타워레코드가 보유한 4만 장의 앨범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정말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나머지 99%의 곡을 없앤다면 장사를 접어야 할지 모른다.
책은 식당 메뉴를 비유로 든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가 인기 없다는 이유로 없애면, 채식주의자를 친구로 둔 사람은 이 식당을 처음부터 배제하게 된다. 가끔 새로운 요리를 맛보고 싶은 손님들의 발길도 뜸해질 것이다. 우리가 대형마트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대형마트에 있는 모든 물건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찾는 물건이 대형마트에는 반드시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에 가지 않는가.
음악산업의 뒷얘기는 책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유튜브 창작자가 시청자와 직접 소통하고 후원 모델로 돈을 버는 방식의 원조가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란 사실을 아는가. 라디오헤드는 2007년 10월 새 앨범 ‘인 레인보우즈’를 인터넷에 무료 공개하며, 내고 싶은 만큼 돈을 내라고 했다. 중간 퍼블리셔의 힘이 약해지고 창작자와 이들이 활동하는 플랫폼의 힘이 강해진 현재의 모습을 예고한 사건이었다.
음악산업을 다뤘지만,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 책에 더 열광한다. 그만큼 대중음악과 비슷한 처지에 놓은 산업이 많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먼저 겪고, 먼저 회복한 음악산업이 걸어온 길을 뒤따를 산업들이 도처에 존재한다. 그렇게 타잔 경제학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힘을 발휘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