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청정지대임을 표방해온 북한 전역에서 감염 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하면서 방역 및 치료를 위한 인도적 지원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어제 “4월 말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이 전국적 범위에서 폭발적으로 전파 확대돼 짧은 기간에 35만 명의 유열자(발열자)가 나왔다”고 전했다. 그제 하루에만 1만8000여 명의 유열자가 발생했고, 기존 오미크론보다 전파력이 강한 변이종 BA.2(일명 ‘스텔스 오미크론’)로 인한 사망자도 있다고 한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북한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데다 지금까지 백신 접종률이 0%라는 점이다. 북한 주민의 상당수가 만성 영양결핍에다 면역 기능이 떨어진 상태여서 감염 확산이 빨라지고 사망자가 크게 늘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인도적 차원의 남북 방역협력 및 지원 방침을 신속히 밝히고 나섰다. 통일부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도 코로나19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을 지원할 방침을 밝혔다.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 방침은 순수한 동포애의 발로이자, 극도로 경색된 남북 간의 대화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하지만 이를 마냥 환영할 수만 없는 것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북한은 그제 코로나19 비상방역체계로 전환한 가운데서도 대남용 ‘초대형 방사포’로 추정되는 단거리 탄도미사일 세 발을 동해상으로 쐈다. 올해 들어서만 16번째 무력 도발이다. 핵실험 재개 징후도 지속적으로 포착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들어 ‘국가 핵무력 완성’과 ‘핵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거듭 천명하며 도발 강도와 빈도를 높여왔다. 무력 도발 규탄과 인도적 지원 방침을 동시에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율배반적 현실인가.

북한은 2019년 6월 국내산 쌀 5만t을 지원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제안을 거부하는 대신 “삶은 소대가리” 등의 비방으로 답했다. 국제사회의 코로나 백신 지원도 거부해왔다. 게다가 지난달 평양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 등이 이번 코로나 대확산의 원인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북한이 먼저 요청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원 방침을 서둘러 밝히는 게 온당한지 의문이다. 국민적 관심과 동의부터 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