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兆 규모 LNG 프로젝트
2년 새 원자재·선가 급등에도
카타르 측 "당시 계약대로 체결"
요구 수용 땐 1척당 600억 손실
업계 "조선사 실적 리스크 우려"
계약서 조사 나선 국책은행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이달 초 조선 3사에 2020년 6월 카타르에너지(옛 카타르페트롤리엄)와 맺은 DOA 원본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본계약 체결에 앞서 은행이 조선사에 가계약서인 DOA 제출을 요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조선사들은 DOA 제출 여부를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통상 은행들은 조선사가 선박을 주문한 선주와 본계약을 체결한 뒤에야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을 위해 본계약서를 요구한다. RG는 조선사가 선박을 제때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했을 경우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물어주는 지급보증서다. 수주계약은 RG를 발급받아야만 마무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카타르 측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동시에 일부 조선사가 계약을 따내기 위해 저가 수주를 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다.
조선 3사는 2020년 6월 카타르에너지와 대규모 LNG선 발주 권리를 보장하고 도크 슬롯 계약을 담은 약정서를 체결했다. 수주 규모는 700억리얄(약 24조6000억원)에 달한다. LNG선 한 척의 선가가 2200억~2300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100여 척을 수주한 것이다. 다만 비밀 유지조항에 따라 조선사별 계약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2년 후인 이달 초부터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다.
문제는 후판 등 원자재 및 신조선가가 2년 전에 비해 크게 뛰었다는 점이다. 조선향(向) 후판 가격은 2020년 t당 60만원대에서 올 상반기 120만원대로 두 배로 상승했다. 신조선가 지수도 2020년 말 125에서 올해 157.8로 올랐다. 신조선가는 슈퍼 호황을 누렸던 2009년 이후 13년 만의 최고치다.
러시아에도 10조원 물려
새 정부도 각종 외교라인을 동원해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카타르 측은 2020년 국내 조선사와 DOA 체결 때 당시 선가 기준으로 본계약을 맺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과 수은이 조선사에 DOA를 제출하라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업계에선 당시 업황 부진으로 ‘수주절벽’에 시달리던 일부 조선사가 더 많은 물량을 따내기 위해 저가 수주를 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카타르 측은 지난 2년간 선박에 대한 친환경 규제가 강화된 만큼 관련 설비도 추가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요구보다 더 많은 설비를 장착한 선박을 더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겠다는 의도다. 카타르 측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척당 500억~600억원가량의 손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조선업계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협상이 늦어지면서 본계약도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 조선업계의 설명이다.
조선업계는 카타르 측의 ‘선가 후려치기’가 당시 수주한 100여 척에 모두 적용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지난달 말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2027년까지 단계 수주하는 프로젝트기 때문에 당장의 손실이 그대로 반영되는 구조는 아니다”며 “당시 가격도 시장가보다 높은 수준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시장에서는 조선업계의 실적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러시아에 이어 불거진 카타르 리스크가 조선업계 주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조선 3사는 국제사회의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로 10조원에 달하는 러시아 수주 물량 대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 국내 주요 조선업체가 러시아 선주로부터 수주한 선박 및 해양플랜트 규모는 80억5000만달러(약 10조3000억원)에 달한다. 삼성중공업 50억달러, 대우조선해양 25억달러, 현대중공업그룹 5억5000만달러 등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